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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2014년 한·러 공동학술회의 한·러 발해 공동 연구 성과와 과제
  • 김은국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동북아역사재단은 한성백제박물관과 공동으로 지난해 12월 16,17일 이틀에 걸쳐 한성백제박물관 대강당에서 "한국사 속에서 발해의 역사와 그 위상"을 주제로 2014년도 한·러 공동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번 회의는 "러시아 프리모리예 문물전" 서울 개막에 맞춰 열렸다. 이 문물전은 한성백제박물관이 러시아 극동역사고고 민족학연구소 박물관과 협정을 체결하여 올해 2월까지 전시한다 (2015. 2. 22 까지). 전시 대상 유물은 선사시대에서 현대까지 연해주에서 발굴한 역사고고 문화유물 6백여 점이다. 지금까지 국내 연해주 문물전으로는 가장 큰 규모에 해당한다.

연해주 환동해 문화권과 발해

연해주는 한국의 선사시대 이래 환동해(環東海) 문화권에서 한반도와 인적 물적 교류가 왕성하였던 곳이다. 연해주는 두만강을 기점으로 한국사의 백두대간과 연결되며, 백두산과 압록강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한국사 줄기의 대동맥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해동성국 발해(渤海)는 교차하는 이 두 길을 통해 신라·고려 시기에는 남북국(南北國)의 중원 문화는 물론, 거란, 위구르 등 북방·유목민족과 교류하고, 일본에게는 대륙과 해양문화 교류의 중추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자, 연해주에서는 중세 시기 최초로 세워진 국가였다. 그러나 발해 멸망 후 한국사로서 영역은 더 이상 연해주와 백두산 너머로 뻗어가지 못하고 말았으니, 가히 발해는 연해주와 백두대간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그자체라 하겠다.

발해 멸망 후 연해주가 청나라의 영향권에 들어가기까지 발해 유민들은 발해의 전통을 고스란히 '타임캡슐' 속에 담아 놓았다. 연해주는 1860년 후 청나라에 이어 러시아 영역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지금도 크라스키노 발해 염주성 등 발해 유적을 발굴하면 지표면 바로 아래에서 연해주 거주 '고려인'(19세기 이후 연해주에 정착한 우리 동포를 러시아에서 이렇게 부른다)의 유물이 나오며, 다시 10cm 가량 더 깊이 발굴하면 어김없이 발해 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연해주 발해 유적은 발해 멸망 후 시간이 천여 년 가까이 흘렀지만, 이곳을 다시 찾은 우리 동포들은 발해민이 거주한그 자리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백두산과 압록강을 지나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모인 동포들은 마치 발해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 연해주가 있기까지 대륙과 해양을 넘나들며 백두대간과 환동해 문화의 중추로 활약하였다.

크라스키노 발해 염주성은 러시아에서 처음 발굴한 지 30년, 한국이 러시아와 공동으로 발굴하여 공동보고서를 출간한 지 20년을 맞이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열린 학술회의는 이틀에 걸쳐 제1부 '연해주와 발해', 제2부 '발해연구의 현주소', 제3부 '발해연구의 과제', 그리고 종합토론으로 마무리하였다.

발해 연구의 과제와 방향 모색

제1부는 지난 20년간 한·러 발해 유적 공동발굴을 이끈 한국과 러시아의 대표 학자들이 발표하였다. 먼저 E.겔만(E.Gelman) 러시아 측 크라스키노 발굴단장(러시아 극동역사고고민족학연구소)이 '연해주 출토 8~10세기 시유 세라믹과 자기'를, 다음으로는 크라스키노 발굴의 한국 측 책임자인 필자가 '크라스키노 발해성 발굴 성과'를 각각 발표하였다. 또 연해주 중부에 위치한 '꼭샤롭카' 발해 유적에 관해서는 발굴 책임자인 윤형준 학예연구사(국립문화재연구소)가 소개하여 주었다. 제1부에 있었던 세 발표는 한·러 발해 유적 공동발굴이 오늘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양국 간 돈독한 우호와 연구 교류 때문임을 재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또 향후 발굴 추이를 가늠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와 함께 1990년대 선구적인 연해주 조사 열정을 회고하고, 러시아 학자들의 변함없는 지원과 교감에 감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제2부는 최근 발해 연구의 현황을, 주로 '말갈(靺鞨)'을 중심으로 검토하기 위하여 기획하였다. 한규철 교수(경성대)는 '삼국 및 발해사에서의 말갈', 정석배 교수(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발해문화에 보이는 황제국의 요소들', 그리고 나영남(경기대)은 '요금(遼金) 시기의 발해인' 등을 발표했다. 중국 학계에서는 종종 말갈이 당나라 때 소수민족으로 지방 정권인 발해를 건국한 중심세력이라고 억측하는 사람들이 그 근거로 활용한다. 한규철 교수의 발표는 이를 반박하며 연해주 문화단계에서 말갈의 의미를 재조명하여 앞으로 말갈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여 주었다. 정석배 교수는 한규철 교수 발표와 연계하여 발해의 황제국 요소 구비를 실증적으로 소개하여 발해의 국가적 위상을 재정립해 주었다.

제3부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발해 연구과제로, 유니키틴(Yu.Nikitin) 박물관장(러시아 극동역사고고민족학연구소)의 '연해주북부의 중세시대의 고고학 유적들', 권은주 교수(경북대)의 '발해의 대외교류와 주민구성의 다양성', 이효형 교수(부산대)의 '발해 유민사 관련 고고학 자료의 검토'가 차례로 이어졌다. 제3부의 특징은 사료인 문헌과 고고학 자료의 상호 연계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이후 발해사 연구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번 학술회의 주제는 한국사에서 발해가 차지하는 위상이었으며, 연해주 문물전의 서울 개막 행사였다. 그간 거둔 한·러 공동 발굴 성과를 디딤돌 삼아, 동아시아 전반으로 확산한 발해 디아스포라를 한국사에서 재정립하는데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점을 깊이 새기는 자리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