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지난 6월 17~19일까지 제주도에서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등과 함께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국제학술행사'를 개최했다.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는 20세기 전반의 식민통치 시대와 해방 후 단절을 극복하고 새로운 양국관계의 출발을 의미하는 일이었으며, 2015년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재단의 조윤수 연구위원은 이번 행사에 참여한 기미야 다다시 교수를 만나 한일관계의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 관계 발전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_ 편집자 주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교수
1960년 시즈오카(靜岡)현에서 출생했다. 1983년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후, 1993년 동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밖에 현대한국연구센터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조윤수 1980년대 한국에서 유학을 하셨는데 당시 한국 연구를 하는 사람은 매우 극소수였다. 한국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기미야 다다시 처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나 한일관계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동세대 한국연구자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래 관심은 주변부에서 바라본 국제정치 문제였다. 그중 한 방법으로 제3세계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사례 연구로 한국의 박정희 정권에 관심이 생겼다. 한국과 같은 발전도상국이 자본주의 세계 경제체제에서 경제발전을 추진할 때 어떠한 제약을 받았는지, 또 어떠한 기회를 부여 받았는지, 그런 기회와 제약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국내 정치경제체제를 구축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한국 연구라기보다는 보편적인 국제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조윤수 일본 내에서 한국 사회에 정통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한국 연구를 하면서 느낀 학문적 보람은 무엇인가?
기미야 다다시 첫 번째 질문과 연관지어 말하면 한국을 연구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사 연구와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주변부(periphery)에서 반주변부(semiperiphery), 나아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한국의 정치, 경제 양 측면을 연구 범위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냉전과 자본주의 세계 경제라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 정치와 경제를 규정했던 각각의 관계를 한국 연구, 한반도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분명하게 가시화할 수 있었다. 나아가 한국 연구, 한반도 연구를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상대화하고 일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깊이 고찰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겠다.
조윤수 현재 양국관계가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최악이라며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이러한 원인을 냉전 종식과 한국의 경제 성장이라는 구조적 변화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기미야 다다시 냉전 종식, 남북 체제 경쟁에서 한국이 승리함에 따라 한일 간 연대가 느슨해진 것, 한국의 지속된 발전으로 한일 간 힘의 관계가 수직적인 상호 보완관계에서 수평적인 상호 경쟁관계로 변한 점, 중국이 대국화하고 이와 함께 동아시아의 힘이 이동한 점 등 구조적 요인이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배경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조적 요인에 제약 받는 한일관계를 타개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현재 상황이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정부, 그리고 양국의 사회가 이런 구조적 변용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현재 한·일 두 나라는 이러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도 자꾸 선택의 폭을 좁게 정함으로써 구조적 변용 가운데 한·일 양국이 경쟁적으로 공존해 나갈 가능성을 스스로 없애 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윤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비롯하여 일반 시민들도 한일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한때 한류 붐으로 일본 내에서 한국어 열풍이 분 적도 있는데 요즘은 일본 내 한국 연구자들도 한국 관련 발언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기미야 다다시 분명 일본 내 한국 연구자들이 발언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지만, 나는 그 정도로 '언론의 부자유'를 느끼지는 않는다. 다행히도 여러 매체를 통해 나름대로 발신의 기회는 주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이용해서 왜 한일관계를 타개해야 하는지, 타개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미력하게나마 알려나갈 생각이다. 다른 연구자들도 발언이나 홍보를 꺼리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 부분은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단지, 지금 자민당 내부 연구회 모임에서 나온 발언처럼 권력자(여당 의원 등)가 권력을 이용해 언론에 압력을 가해도 좋다는 식의 발언이 일본 여당에서 공공연하게 나온 것에 솔직히 많이 놀랐다.
조윤수 1965년 한일회담 당시의 외교문서를 읽어보면 물론 잘못되었다고 비판 받는 부분도 있으나, 선인들의 지혜를 반영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협정에 기여한 사람을 양국에서 꼽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미야 다다시 비판을 각오하고 말하자면, 역시 한국에서는 박정희, 김종필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가 아닐까 한다. 이유는 각자 국내에서 비판 받을 것을 알았음에도 한일 국교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추진했기 때문이다.
조윤수 지난 6월 22일은 한일협정 조인 50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는 리셉션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참석하면서 그동안 경색되었던 한일관계가 풀리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일본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하다.
기미야 다다시 일본의 분위기도 확실히 우호적으로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이 리셉션에 참석하기로 판단하고, 아베 총리에게 그 뜻을 전한 것 같다. 아무튼 한일 두 정상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이후 일본 주간지에 실린 아베 총리의 비공식 발언이 주목을 받으며 총리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졌다. 일본에서는 세계유산 등재 문제로 한국에 불신감을 표출하는 보도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만으로 금방 한일관계가 타개될 것이라고 보긴 힘들 것 같다.
조윤수 1965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말이 양국에서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한·일 간 역사 갈등을 해소하고 양국의 우호적인 미래를 위해 평소에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기미야 다다시 새롭고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한·일 정부와 사회가 함께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한 획기적 패러다임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기피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문제에 관한 한·일 양국의 여론을 생각하면 실현이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 1965년 체제를 어떻게 유지하고 진화시킬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혁신과 진화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체제는 한·일 양국이 분별력을 갖고 신중히 관리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스스로의 안전보장을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한국을 희생시킴으로써 한국에 식민지배라는 굴욕적 상황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러한 역사를 포용하는 자세로 한일관계의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정치지도자의 난폭한 언행과 신중하지 못한 선택은 한·일 두 나라가 지금까지 장기간 축적해온 노력들을 단번에 헛수고로 만들어 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한다.
조윤수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과거와 같이 보편적 가치를 뒤로한 채 국익이나 정계와 재계의 단기이익을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한국에서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미야 다다시 이 지적에 대해서는 유감스럽지만 의견이 다르다. 현실적으로 보면 국가는 국익을 우선해서 행동하고, 아무리 가까운 일본과 한국이라도 기타 행위자들이 자신의 이익에 눈 감고 행동하기는 어렵다. 사람, 국가는 이타적인 존재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오히려 국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다. 일본만 배타적으로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국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한·일 양국이 협력해서 상호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고, 이런 방법을 통해 국제적 공공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 지금은 이익에 관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익에 눈 감고 행동하기 어려운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도 역시 국익을 전자가 아닌 후자와 같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이를 독점하지 않고 상호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조윤수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과 관련해 8월에 있을 '아베 담화'가 주목받고 있다. 한일관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이것만은 꼭 '아베 담화'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면?
기미야 다다시 아베 담화에 관해 항간에서 '반성'은 포함하지만 '침략', '식민지지배', '사죄'를 포함시킬지는 불투명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베 총리는 구체적인 말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 언급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무라야마 담화는 명확히 계승한다'든가, 과거의 역대 내각의 담화는 계승한다고 했으니 그것을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윤수 지금 일본에서 한국 연구를 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미야 다다시 내가 한국 연구에 뜻을 두고 연구했던 때에 비하면 한국의 상황, 한일관계, 세계에서 한국 연구 상황 등 모든 환경이 변했다고 느낀다. 이를 전제로 조금은 모순인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일본의 한국 연구 수준을 한국에서 이뤄지는 한국 연구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아가서는 세계에서도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높여주길 바란다. 다시 말해서 일본에서 하는 한국 연구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길 바란다. 둘째, 일본만의 한국 연구, 다시 말하면 한국의 한국 연구에도, 세계의 한국 연구에도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연구를 개척해주길 바란다. 이 두 가지 당부는 언뜻 보면 모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자는 일인자(the number one)를, 후자는 단 한 사람(the only one)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여기에 일본의 한국 연구의 존재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