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하지만 2% 부족한: 중국고고박물관 참관기
이유표 재단 한중연구소 연구위원
5년 만이다. 2019년 2월, 베이징을 찾아 지인들과 회포를 풀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누구를 만날까?’, ‘또 어디를 갈까?’ 이렇게 끄적인 일정표에는 지인들의 이름, 먹고 싶었던 음식들, 가고 싶었던 박물관과 유적들로 꽉 차 있었다. 박물관 가운데는 중국고고박물관(中國考古博物館)에 꼭 가보고 싶었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의 발굴 성과를 전시해 놓은 만큼 중국 국가급 ‘고고’ 전문 박물관인 만큼 전시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중국역사연구원 전경(재단 박선미 연구위원 제공)
박물관에 대한 기대
“박물관의 도시 베이징에서 박물관 딱 한 곳만 가야 한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중국고고박물관을 추천합니다.” 필자보다 1주일 먼저 중국고고박물관을 찾은 지인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그래서일까? 박물관에 대한 기대는 높아져 갔다.
7월 23일 오전, 베이징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올림픽공원에 다다랐을 때 중국의 청동 예기(禮器)인 방준(方尊)을 모티브로 한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건물은 생각보다 웅장한 자태로 조금씩 가까워졌다. 여기가 바로 2019년 1월에 설립된 ‘중국역사연구원’으로 중국고고박물관은 바로 이곳에 자리한다.
박물관은 2023년 9월 15일에 정식 대외 개관한 이후 인산인해를 이루어 입장권을 예약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나 박물관이 연구자들을 배려하여 화요일에는 역사·고고 관련 단체의 입장만 받고 있어 당일 박물관 방문을 계획한 단국대 고대문명연구소의 배려를 받아 참관할 수 있었다.
중국고고박물관 1층 중앙홀 전시(필자 촬영)
베이징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박물관
박물관 1층 중앙홀은 좌우 대칭형 구조로 설계되었다. 좌우에는 인쉬(殷墟)에서 출토된 상나라 차마갱(車馬坑)을 각각 전시하였고 그 사이에는 중국사를 요약한 연표가 바닥에 설치되었다. 그렇게 중국사의 끝에는 ‘역사중국 정주문명(歷史中國 鼎鑄文明)’ 여덟 글자의 상설전 소개와 함께 2층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전시실로 연결된다.
상설전은 2층에서 4층에 걸쳐 다섯 장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장은 ‘문명기원(文明起源)’으로 선사시대를, 두 번째 장은 ‘택자중국(宅玆中國: 나라의 한가운데인 이곳에 자리를 정하다)’으로 ‘하(夏)’나라, ‘상(商)’나라, ‘주(周)’나라 ‘삼대(三代)’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층별 구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선사~삼대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세 번째 장은 ‘대국일통(大國一統)’으로 진시황부터 아편전쟁까지, 다섯 번째 장은 ‘민족각성(民族覺醒)’으로 근현대를, 그 사이에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제4장 ‘화융만방(和融萬方: 만방이 조화롭게 융합되다)’을 삽입하여 중국과 세계의 교류를 전시하고 있다. 이는 시진핑 정권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전술한 대로 전시품은 대부분 고고연구소가 직접 발굴한 것으로 전시품도 그에 걸맞게 각지의 ‘진품명품(珍品名品)’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실견하고 싶었던 얼리터우문화(二里頭文化)의 ‘용’형기(‘龍’形器)와 상나라 상아배(象牙杯), 서주(西周)시기의 동희준(銅犧尊) 등은 물론 전시장을 구성하는 소소한 유물 하나하나가 모두 일품(逸品)이었다.
전시 기법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예컨대 디지털 터치스크린을 곳곳에 설치하여 관람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고 유물 파편 일부는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개방하기도 했으며 홀로그램 등을 활용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더했다. 관람객들에게 ‘중국의 우수한 고대문명’을 느끼게 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얼리터우 출토 터키석 ‘용’형기 전시 효과(필자 촬영)
부호묘(婦好墓) 출토 상나라 상아배
(창원대 손성욱 교수 제공)
서주시기 동희준(필자 촬영)
가시지 않는 여운, 그럼에도…
박물관의 전시품을 보면서 몇 차례나 탄성을 자아냈는지 모른다. 그만큼 정신없이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박물관을 나와 이동하면서도 계속 사진을 보며 그 여운을 사람들과 나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와 고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몇 가지 아쉬움도 느꼈다.
먼저 전시품이 고고연구소의 발굴 성과에 제한되다 보니 ‘중국 고고’에 대해 전체적으로 살피는 데 부족함이 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구성된 전시는 역사의 보조수단으로 고고 유물을 전시하는 여타 박물관과 큰 차별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국가박물관의 ‘고대 중국’ 상설전과 비교해 보면 시각적인 효과는 더 훌륭할지 몰라도 내실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일전에 필자는 중국 산둥성(山東省) 지난(濟南)에 있는 산둥박물관(山東博物館)을 참관하면서 ‘주진고고학(走進考古學: 고고학에 나아가다)’이라는 전시실에서 ‘고고학’이 어떤 학문인지 또 지하의 유물이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박물관에 전시되고 어떻게 연구에 활용하는지 그리고 ‘중국 고고학’ 자체의 ‘고고학사’를 소개하는 데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 중국고고박물관에서도 이러한 ‘고고학’과 ‘고고학사’를 기대했으나 시대에 따른 진품명품만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근현대를 전시한 ‘민족각성’ 부분에 전근대적 학문을 극복하기 위한 과학적 수단으로서의 고고학에 대한 지향과 실천, 한계와 극복 등을 추가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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