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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역사바로잡기와 동북아 지역 공동체 의식
  • 이상우 신아시아연구소장 前 한림대 총장

동북아역사재단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동북아 지역에 평화질서를 창출하는 토대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총괄하는 기구다. 폭넓은 시야와 긴 시폭(時幅)을 가지고 이웃나라의 지식인들과 힘을 모아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기구이기도 하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서로 다른 역사 인식

18세기 일본을 방문했던 신유한(申維翰) 선생과 일본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의 대화를 읽은 적이 있다. 아메노모리가 임진왜란에 대해 일본이 성(誠)을 다하여 사과했으니 이제 과거를 잊자고 했을 때 신유한 선생은 일본의 행동과 사과는 경(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어서 조선 사람은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중일 세 나라는 모두 예악질서(禮樂秩序)라는 공통의 정치체제를 갖춘 나라였다. 예(禮)는 사회 관리에 관련된 여러 역할(role)들을 연결해놓은 정치질서다. 대자연의 질서(道)를 인간의 이성적 추리로 찾아내어 만들어 놓은 정교한 규범질서다. 이 질서를 가시화시킨 상징이 의(儀)이다.

일본 사람들은 의를 성실히 따르면 바른 행동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의가 아닌 예(禮)의 정신을 더 소중히 여긴다. 예에 상대에 대한 경(敬)이 담기지 않으면 수용하지 않는다. 일본사람들은 형식에 충실하면 성을 다한 것이라 생각하고 한국 사람은 형식보다 밑바탕의 본성을 더 중시하다. 오늘날의 한일 관계가 안 풀리는 것은 이런 근본적인 사물 인식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의사소통 '코드'가 다르다.

미래에서 오늘을 되돌아보자

지난 10여 년 동안 한중전략대화에 참여했다. 북한 핵문제 등 현안 문제를 놓고 똑같은 주장을 반복적으로 교환하는 답답한 회의였다. 작년 회의에서 내가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우리는 귀국과 현안 문제를 논할 때는 항상 통일 후를 생각하며 문제를 다룬다. 한국 주도의 통일은 이제 상식이 되어 있다. 귀측도 통일 이후의 한국, 즉 한국 주도로 이루어진 통일한국과의 관계를 미리 염두에 두고 오늘의 현안 문제를 다룰 수 없겠는가? 그리고 2050년경에는 귀국도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점도 미리 감안해보면 어떤가? 미래의 시점에서 역시간적으로 오늘의 문제를 보면서 오늘의 현안 문제를 다루자"고 개회인사에서 제안했다. 중국 측에서도 동의하는 기미가 보였었다. 내일의 시각에서 오늘을 보면 오늘의 갈등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동북아 지역 공동체 의식은 만들 수 있다

모든 질서는 공동체 구성원의 자발적 수용과 지지가 있어야 제대로 작동한다. 이러한 체제 수용과 지지는 구성원들이 같은 공동체에 속하고 있다는 의식, 즉 공동체 의식을 공유할 때 형성된다. 이런 공동체 의식을 예악질서에서는 악(樂)이라 했다. 인간도 크고 작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기가 뭉쳐 모양을 갖춘 존재이므로 이러한 공통의 기를 영혼 속에 간직하고 있다. 개인의 내재적 기와 우주의 기 사이에 공명(共鳴)이 일어날 때 인간은 다른 인간과 서로 하나됨을 깨닫게 된다. 그 상태를 악(樂)이라 했다. 그래서 '깨친 사람'들간에는 한 가지 정감을 갖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이 생긴다고 했다. 바로 이 의식이 질서를 뒷받침할 때 예악질서(禮樂秩序)는 완성된다고 보았다.

한국인과 중국인과 일본인은 오랜 세월 같은 정치철학을 공유해왔고 같은 예악질서에 바탕을 둔 정치체제 속에서 살아 왔다. 이런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되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동북아 지역이라는 지역 공동체에 대하여 '같은 공동체 소속원'으로서의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나온 역사를 각 민족이 편협된 자민족 우월주의에 이끌려 아전인수적으로 왜곡하면 민족간의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함께 노력하여 역사를 긴 시간과 넓은 폭으로 이해하게 되면 지역 내의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를 시야에 넣게 되면 한중일은 함께 도우며 살아야 할 이웃이라는 걸 모두 쉽게 깨닫게 될 것이다.

한중일은 가장 가까운 이웃

한중일 사이의 협력과 상호 이해를 막는 장벽은 세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 내세우는 배타적 민족주의 때문이다. 세 민족 모두가 잘못된 역사 교육을 받아 선민의식을 가지고 상대를 내려 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서로 많은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 다같이 '하늘'이라 표현하는 대자연 질서를 최고의 가치판단의 준거로 삼고 살아 왔다.

유교, 도교, 불교 그리고 샤머니즘 등의 공통된 종교를 가지고 살아 왔다. 한자 문화도 공유하고 있다. 인종적 유사성도 높다. 그리고 이웃으로 살면서 오랫동안 간단없는 문화교류로 많은 문화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수많은 세계 인종 중에서 세 나라만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들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서로 가까워야 할 세 민족 사이가 국가 지도자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배타적 민족주의를 부추겨 오면서 국가간 갈등으로 그리고 민족적 갈등으로 변질되었다. 정치가 나누어 놓은 것을 사람과 사람간의 접촉 증대로 다시 통합하면 지역 공동체 구성의 기반인 공동체 의식을 재생할 수 있다고 본다. 역사바로잡기는 세 나라 국민들이 공유한 문화적 연계를 다시 확인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유럽에서는 27개국이 유럽공동체(European Union)라는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삶의 터전을 지역 단위로 넓히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도 동북아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세 나라간의 갈등 수준이 높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공동체는 국가들이 주도해서는 성사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도 한중일 3개국 국민들이 희망하고 지지하게 되면 가능해질 수 있다.

세 나라 국민들이 지나온 역사에 대하여 같은 인식을 갖게 되고 서로 사과할 것을 사과하게 만들면 서로가 용서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이웃으로 마음을 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왜곡해온 역사를 바로잡아 한중일 3개국 국민들이 똑같은 역사 인식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바로잡기 운동은 일차적으로 한중일의 국민을 대상으로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바로잡기가 곧 밝은 미래 창조 작업이다

역사는 현재의 관심에서 옛 일을 재구성해놓은 것이다. 현재의 관심이 바뀌면 역사는 바뀐다. 역사적 사실은 불변이나 '역사'는 계속 진화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동북아 지역에 평화질서를 창출하는 토대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총괄하는 기구다. 폭넓은 시야와 긴 시폭(時幅)을 가지고 이웃나라의 지식인들과 힘을 모아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기구이기도 하다.

재단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재단이 이루어놓은 업적은 대단하다. 특히 일반 국민들이 가진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 잡는데 큰 기여를 해왔다.

우리 국민들이 재단 활동에 거는 기대도 크다. 재단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에 앞장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연구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미래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 연구는 곧 미래 창조의 작업이라고 생각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