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말 수명의 재단 연구위원들은 일본 도쿄 일대의 역사유적과 박물관 등을 조사하는 한편, 일본학자와 시민단체 관련인사들을 면담했다. 연구위원들은 재일한인역사자료관, WAM(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야스쿠니 신사 및 부속건물인 유슈칸 등을 둘러보았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재일한인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있었고, WAM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반면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인들의 합사 철폐 요구에도 여전히 응하지 않고 있어 문제인데, 유슈칸의 설명문 역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연구위원들은 또한 일본학계의 한국학 연구동향을 파악했으며, 일본에서 출판이 추진되고 있는 『한국강제병합 100년-역사와 과제』의 마무리 작업을 점검했다. 연구위원들의 역사현장 탐방과 현지동향을 간략히 소개한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WAM, 야스쿠니신사 현장 탐방
맨먼저 우리는 재일민단이 후원하고 강덕상 시가현립대학(滋賀縣立大學) 명예교수가 주도하여 세운 재일한인역사자료관으로 향했다. 이 자료관은 10여년의 자료수집 기간을 거쳐 2005년 11월 개관하였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100여년의 역사가 넘는 재일한인 관련 자료를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전시, 연구, 보존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재일한인 자료의 수집, 전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는 특히 관동대지진 관련 자료를 눈여겨 볼 수 있었다.
이후 와세다대학 근처에 있는 WAM(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을 방문하였다. 이 곳은 2005년 8월 개관한 순수 민간단체로 많은 여성들을 비롯한 회원들의 회비와 자발적 성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 우익세력의 위협 속에서도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 관련 전시와 세미나ㆍ심포지움 개최, 조사 출판, 자료 수집과 열람, 여러 연대행동 등 상당히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케다 에리코(池田惠理子) 관장과의 대담을 통해 현재 일본 위안부 관련 NGO운동의 현황과 한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 단체와 긴밀한 연계와 협조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26일에는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는 야스쿠니신사와 그 부속 군사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 그리고 치도리가후치 전몰자묘원(墓苑), 쇼와관(昭和館)과 쇼케이관(承繼館, 戰傷兵者史料館)을 방문하였다. 오전 일찍 찾아간 야스쿠니신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단체 관람객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대로 야스쿠니신사에는 'A급전범' 14명이 합사되어 있고, 일본의 전쟁에 동원된 2만 1천여 명의 한국인도 합사되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측은 한국인 유족들의 한국인 합사 철폐 요구에도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일본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있는 기능을 맡고 있는 군사박물관인 유슈칸의 전시내용은 큰 문제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유슈칸의 출구 부분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각국 독립' 부분 전시판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었다.
"일로(日露)전쟁의 승리는, 세계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독립의 꿈을 주고, 많은 선각자가 독립, 근대화의 모범으로서 일본을 방문했다. (중략) 아시아 민족의 독립이 현실로 된 것은 대동아전쟁 서전(緖戰)의 일본군에 의한 식민지 권력 타도 후였다. 일본군 점령하에서 한번 타오른 불꽂은 일본이 패해도 꺼진 것이 아니라, 독립전쟁 등을 거쳐 민족국가가 차차 탄생했다"
진실을 왜곡하는 유슈칸 출구 안내문
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 말인가! 우리나라를 불법으로 강점한 뒤 온갖 억압과 수탈, 동원을 자행한 실상은 외면하고 역사적 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지고 자아도취적이며 왜곡된 내용으로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시설인 쇼와관이나 쇼케이관 등 박물관 역시 태평양전쟁 시기 미군에 의한 일본의 피해를 강조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사태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았다. 국립기관이 오도된 역사인식을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우리가 일본의 주요 전시관과 박물관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7일 오전에는 도쿄국립박물관을 방문하여 한국관련 전시 내용등을 살펴보았다. 오후에는 도쿄대학에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세미나를 참관하고 참가자들과 의견을 교환하였다. 28일 오전에는 도쿄 근처의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을 관람하였다. 한일관계사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는데, 관동대지진시 한인관련 내용도 전시하고 영상자료도 상영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지바현 야치요(八代千)시 간논지(觀音寺) 경내에 한인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관동대진재 조선인 희생자 위령의 비'와 종루, 시비(詩碑)를 탐방하였다.
관동대지진 희생한인 추도모임 주도하는 니시자키 선생
귀국하는 날인 29일에 관동대지진(일본에서는 '관동대진재'라고 함) 때 학살된 한인들 관련 자료의 조사수집, 추도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 53세) 선생을 만났다. 1923년 9월 1일 도쿄 일대에서 일어났던 관동대지진으로 희생된 일본인들을 위령하는 시설인 도쿄도 위령당에서 만났는데, 그곳에 '조선인' 추도비도 세워놨기 때문이다.
니시자키 선생은 자택 옆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성금을 모아 추도비를 건립하고 직접 관리하며, 관동대지진시 희생된 조선인들을 조사ㆍ연구하고 추모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사단법인 봉선화 : 관동대진재(震災)시에 학살된 조선인의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는 회'를 조직하여 지속적으로 관련 자료를 발굴하여 자료집을 발간, 보급하고 추도회를 주도하는 등 자발적으로 이 모임을 유지하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학생 때 재일동포를 친구로 알게 되면서 재일한인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동네 바로 앞 하천변에 학살된 한인들이 묻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살된 한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근래 일본이 전반적으로 우경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처럼 일본에는 양심적인 시민이나 시민단체, 학자도 존재한다. 따라서 일부 정치 지도자와 우익세력의 발호와는 별개로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와 언론, 교육계 등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더운 여름 철에 한국보다 남쪽인 일본, 특히 도쿄 일대를 돌아다니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봐야 할 유적지나 역사의 현장도 많았고, 각종 기념관이나 박물관, 자료관도 무척 많았다. 올 9월 1일은 관동대지진 발생 90주기이다. 최소한 6,600여명의 한인들이 학살당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한일간 대응이나 사업도 많다.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안 해결 모색이야말로 우리 재단의 존립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