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 한 젊은이가 3년 동안 잡은 교편을 그만 두고 한국 유학 길에 올랐다. 많은 선생님과 친구의 도움과 기대 아래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의 박사과정을 밟았다. 부모님과 친구와 멀리 떨어진 고독과 위로움에서 4년 기간 동안에 열심히 공부한 끝에 중국대륙에서 한국에 온 유학생 중 처음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학위를 받자 중국의 명문인 푸단대학교 사학과의 교수가 되었다. 이 젊은이는 바로 지금 인생의 절반 세월을 지내본 나다.
한국에 유학했던 동안에 자주 받은 질문은 "왜 한국역사를 공부했느냐"는 것이다. 사실은 대학교에서 전공 없이 중국역사와 세계역사를 전부 배웠다. 특히 다니던 대학교는 사범대학이라서 2년 동안이나 중국통사(中國通史)와 세계통사를 공부하였다. 다만 그 때 중국역사보다 세계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 상해에 있는 화동사범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 근대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입학 직후 석사과정의 지도 교수님께서 중국의 아프리카 역사의 전문가이셨지만 나는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서는 감각이 없었다. 바로 이 때 중한 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되어 상해에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수선ㆍ보전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수선ㆍ보전을 앞두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조사ㆍ연구할 필요가 있어 지도교수님께서는 이 프로그램을 받으신 후에 나로 하여금 조사ㆍ연구하라고 하셨다. 이런 배경 하에서 나는 한국 역사와 처음에 접촉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조사ㆍ연구하는 과정에서 「상 해 시기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란 논문을 작성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졸업한 후에 교편을 잡으면서 계속 한국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나날이 보내던 중 좋은 인연이 찾아왔다. 이것은 1993년 9월 상해에서 김 준엽 선생님을 만나 뵌 것이었다. 그 후 선생님의 도움으로 한국에 유학하게 되었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에서 공부하던 동안 많은 선생님과 선배, 후배들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 근현대사 연구회의 많은 교수님들도 아낌없이 도와 주셨다. 그 뿐만 아니라 한 국 로타리 문화장학재단과 한양클럽은 전례 없이 4년 내내 장학금을 제공해 주었다. 이들 도움으로 순조롭게 학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중국 귀국 직후 푸단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사와 중한 관계사 등 강의를 하면서 계속 관련 연구를 해 왔다. 때문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학술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가끔 있었다. 회의에 참석할 때 꼭 해야 할 일은 '형님'들을 만나서 술을 하는 것이었다. 옆에 계신 한국 분들은 형님들이 언제 한국에 오셨냐고 자주 물어 보셨다. 사실 여기서 얘기하는 형님들은 내가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술자리를 같이 한 여러 대학교 교수님들 이셨다. 이 분들은 내가 멀리 이국타향에서 생활하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거의 한 달 한 번씩 모여서 술을 같이 하였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 나는 술을 전혀 못하였으나 귀국할 때는 술을 아무 문제없이 마실 수 있었다.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잠깐 한국에 체류하는 이외에 여러 재단의 펠로십으로 한국에서 연구생활을 보낸 기회도 있었다. 이럴 때 이전에 한국의 친구와 오래 전부터 맺었던 인연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이번에 동북아역사재단의 해외초청학자로 한국에서 연구생활을 보내는 것도 한국과의 인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연은 내 평생 동안 계속할 뿐만 아니라 지도하는 제자까지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