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백발의 노인이 된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하루 빨리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반성을 통해 굳게 다문 '평화의 소녀상'의 무표정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안겨 주었으면 한다.
미국 LA 도심을 벗어날 때만해도 잔뜩 찌푸렸던 하늘은 해외에서 처음으로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 제막행사가 있는 글렌데일이 가까워지면서 따뜻한 햇살을 비추는 하늘로 바뀌어 있었다. 글렌데일시는 20만명이 거주하는 LA근교 작은 도시로 한인동포가 약 1만명(약5%)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평화의 소녀상' 제막행사가 열리는 글렌데일의 중앙도서관은 시민들의 왕래가 잦은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막행사는 공원에서의 제막식과 중앙도서관에서 열리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대한 그간 행사 경과를 알리는 사전 행사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사전 행사가 열리는 7월 30일 오전 11시보다 20여분 일찍 도착한 김학준 이사장을 비롯한 포함한 우리 재단 방문단 일행의 눈에는 중앙도서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모두 우리와 같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우리 일행도 그 줄에 서서 참가자 등록을 하고서야 행사장을 들어설 수 있었다. 최근 일본계 주민들과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둘러싸고 마찰이 있었던 만큼 행사주최측은 행여나 있을지도 모르는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기 위해 질서 유지에 많은 신경을 쓰는 듯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행사에 미국 주요인사 및 국내외 언론사 운집
행사시각이 가까워오면서 강당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고, 눈에 익은 국내외의 언론사들도 행사장 뒷줄을 가득 메워 이번 행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11시에 행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30분 늦은 11시 반에 행사가 진행된다는 사회자의 안내가 들렸다. 11시 반이 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육성과 내용을 알리는 7분 가량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영상의 말미에는 2007년 일본군 '위안부' 미하원 결의안을 발의한 민주당 마이클 혼다 의원, 연방 하원외교위원장인 공화당 에디로이스 의원, 글렌데일시를 지역구로 하는 민주당 애덤시프 의원의 축하메시지도 있었다. 비디오 상영이 끝난 후 글렌데일시의 '평화의 소녀상'건립을 주도한 가주한미포럼 관계자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식전행사가 진행되었다. 이어 이번에 글렌데일시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글렌데일 시의회의 프랭크킨테로, 로라 프리드먼, 메자리언, 자레흐 시냐얀 의원 등의 축하발언이 이어졌다.
프랭크 킨테로 의원은 글렌데일 시장을 세 차례나 역임하면서 이번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주도하였다. 그는 "일본계로부터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소녀상 건립은 역사를 바로잡는 일로 내 생애에서 최고의 날"이라면서 감격을 표시했다. 로라 프리드먼 의원 역시 "엄청난 압력과 수백 통의 협박메일을 받았지만,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미국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하여 추진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메자리언, 자레흐 시냐얀 의원도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 이번을 계기로 할머니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의원들의 발언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시의 공공부지에 건립하고, 매년 7월 30일을 일본군 '위안부'의 날로 정하는 등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한 그들의 뚝심과 강한 의지,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김복동 할머니 "미래평화 위해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해야" 촉구
이어 글렌데일시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기까지 노력하신 많은분들에 대한 감사와 참석자들의 발언과 축하공연이 있었고, 끝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이번 제막행사에 참여한 김복동 할머니가 단상으로 나왔다. 검정색 치마와 하얀색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김 할머니는 단상에서 중앙도서관 강당을 가득채운 참가자들을 향해 "미래 세대에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려면 일본이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했다. 동시에 "미국 국민들이 오늘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을 보면서 일본의 만행을 제대로 인식하기를 바란다"면서 "소녀상을 잘 지켜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고 은폐하는 망언을 일삼고 있지만, 고통의 역사를 감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짧지만 강한 외침으로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다. 식전 행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을 내려오는 할머니에 대해 격려와 연대를 표시했고 더불어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마음을 열렬한 박수에 실어 보냈다.
1시간에 걸친 식전행사를 마치고 곧바로 중앙도서관 앞에 있는 센트럴파크 시립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본행사가 진행되었다. 정오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의 행사장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식전행사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함께 모이면서 500여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제막 행사를 보기 위해 모였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색깔로 상징되는 보라 색깔의 커다란 천이 '평화의 소녀상'을 덮고 있었고, 보라색 천에는 할머니의 희망을 나타내는 크고 작은 나비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제막식에 앞서 글렌데일 시의회 의원들을 비롯한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발언이 이어졌고, 이 중 특히 10여명의 회원과 함께 참여한 일본계 미국인 시민단체인 NRCC의 캐시 마사오카의 발언이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일본정부가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사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과 잘못된 역사교육을 하고 있는 일본정부 및 일본 정치인들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이들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였다. 우리 일행은 제막 행사에 참가하기에 앞서 일본계 주민들의 협박과 위협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와 달리 행사장에 모인 일본계 주민들은 저마다 일본군 '위안부'의 날을 정하고, '평화의 소녀상'을 공공부지에 건립하는 등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글렌데일시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하였다. 글렌데일시의 '평화의 소녀상' 제막 행사는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가 아닌 보편적 인권을 중요시하는 성숙한 미국의 시민사회가 이뤄낸 축제였고, 그곳에 모인 참가자들도 그날의 행사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평화의 소녀상' 미국에 큰 울림 주기를 희망
이번 글렌데일시의 '평화의 소녀상'까지 포함해서 벌써 미국사회에 네 번째의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뉴욕과 뉴저지주에 세워진 3개의 기림비는 비석의 형태였고, 이번에 세워진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당시를 연상케 하는 소녀의 모습을 한 동상이었다. 외형보다는 그것이 가지는 본질이 중요한 것이지만, 기존의 비석 형태보다는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이 미국사회에 주는 울림은 그 어느 것보다 강하다고 느껴졌다. 이는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백발의 노인이 된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하루빨리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반성을 통해 굳게 다문 '평화의 소녀상'의 무표정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안겨 주었으면 한다. 한 명의 할머니라도 더 생존해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일본정부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대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진정한 해방을 드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