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국,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와 일본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해결해야할 인류 공통의 관심사로 부상한 지 오래다. 물론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등, 90년대 초 일본의 책임을 일정부분 인정하던 때보다 더욱 후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5일 재단을 방문한 민디 커틀러 아시아 폴리시 포인트 소장을 서현주 역사연구실 연구위원이 만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사회 협력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_편집자 주
민디 커틀러(Mindy Kotler)
현재 워싱턴 D.C.에 기반을 둔 아시아 폴리시 포인트(Asia Policy Point)의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스미스대학(Smith College)에서 중국역사를 전공하고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Q 2007년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될 때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민디 커틀러 결의안을 처음 낸 마이크 혼다 의원이 구성한 자문팀의 일원으로 일본의 정보를 수집·정리해서 의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어학, 정책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로 이뤄진 자문팀은 자료를 조사하며 어느 방향으로 결의안을 써나가야 할지 함께 논의했다. 혼다 의원의 이해가 필요한 분야는 따로 설명자료를 작성해 제공하기도 했다.
Q 그때 통과된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의 의미는?
민디 커틀러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먼저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결의안이라는 것은 법안이 아니라 일종의 제안서다. 그 제안서도 오로지 하원에서만 통과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안부' 결의안의 첫 번째 의미는 '위안부'의 존재를 미국에 알리고 그 역사 사실을 입증해준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권자들과 가까운 하원의 특성에 힘입어 처음으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결의안 채택에 대거 관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앞장선 한국계 미국인들 외에도 아시아계 시민들이 다 같이 단결해서 권리를 행사한 사건으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세 번째로 성매매나 인신매매와 같은 사안에는 분파가 갈리지 않고 미국 여야 모두가 합의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Q 2010년 뉴저지주 팰리세이즈 파크(Palisades Park)에 '위안부 기림비'가 설치된 후 미국 곳곳에 세워지고 있고, 뉴저지와 뉴욕, 일리노이 주 의회는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활동들이 미국 사회의 '위안부'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민디 커틀러 결의안 통과는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주요 유권자 중 하나라는 것을 미국 사회에 최초로 인식하게 해준 사건이고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상황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활동, 다시 말해 지역사회 유권자들을 의식한 일이다. 유권자를 많이 의식하다보니 각 주에서 통과된 결의안을 살펴보면 가끔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문구들도 있고, 국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표현도 포함하고 있다.
기림비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보통 미국으로 이주하여·정착해서 안정이 되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불행했던 과거, 예를 들면 대기아, 홀로코스트 등을 잊지 않고자 기림비를 세운다. 하지만 '위안부 기림비'는 단순히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본 측을 압박하는 목적으로 기림비를 세우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희생을 많이 당한 것은 한국 여성들이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한일문제로만 보면 불화를 일으킬 소지가 커진다. 피해를 본 다른 국가 여성들까지 포함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2007년과 2012년 일본인들이 워싱턴포스트지와 뉴저지주 지역 신문에 '위안부' 광고를 게재한 적이 있다. '위안부'는 결코 성노예가 아니며 수입도 많고 대우도 좋았다고 주장한 광고였는데, 그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을 듣고 싶다.
민디 커틀러 두 광고 모두 문구가 매끄럽지 않았고 정리가 안 돼 있었기 때문에 읽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워싱턴포스트에 실렸던 전면 광고는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발표문과 똑같은 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 광고가 나왔을 당시 미 하원의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었다. 그 광고를 보기 전까지 일본에 매우 호의적인 사람이었는데 광고를 보고나서 완전히 돌아섰다고 한다. 여하튼 그 광고때문에 일본이 '위안부'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두 번째 광고는 허리케인 '샌디'가 닥친 지 3~4일 만에 실려 아마 앞 광고보다 본 사람이 더 적었을 것이다. 크기도 워싱턴포스트지보다 작은 데다가 어려운 주제와 매끄럽지 못한 문구 때문에 광고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광고를 이해한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미국의 뉴저지는 허리케인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한 국가 원수가 이 상황에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광고를 냈다는 사실에 분노했을 것이다. 결과를 보면 운좋게(?) 많은 사람들이 광고를 보지 못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국가원수로서 자질을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 그때까지 아베의 행동과 발언들이 비난을 받았는데, 광고가 나간 후 반응이 없어서 아베 측에서는 사람들이 광고 내용을 수용한 것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베의 부적절한 언행이 계속되고 있어서 전에 했던 잘못도 집중조명을 받아 비난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아베 총리는 '고노담화 흔들기'를 계속하고 있다. 향후 추이를 어떻게 보는가?
민디 커틀러 현 아베 내각이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고노담화의 의미는 이미 빛바래고 허물만 남아 있는 형국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아베는 자신의 첫 번째 내각에서 고노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또 고노담화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밀어붙였다. 그렇게 담화문의 의미를 변질시키는 데 주력하였고 이후에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사실들이 과연 입증 가능한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2013년 10월 산케이신문이 "16명의 피해자 증언,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보도를 내보내며 사실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결국 아베는 고노담화를 변질시키고 법적인 위상을 지워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사실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이후 여러 나라 학자들이 사실에 의심을 품고 관심을 표명할수록 일본 사람들의 의구심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베와 산케이신문의 전략은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Q 다시 미국사회 이야기로 돌아가서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이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 정계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어떤가?
민디 커틀러 힐러리의 발언이 적절한 때에 한 적절한 발언이기는 하지만 그 발언이 미 정계의 인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전시 여성에게 행해진 성폭력에 대한 대처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힐러리의 발언도 이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점점 커져 작년 G8 외무장관회담에서는 '전시성폭력 근절에 관한 G8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전시성폭력이라든지 성노예에 관한 인식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힘입어 '위안부는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퍼진 것이다.
국제적으로 인식이 확산되다 보니 아베 측에서는 이것이 한일간 문제일 뿐이며 한국은 불평만 한다고 부각시켜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의 '위안부' 피해 여성들도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더 널리 알려 단순히 '위안부' 문제가 두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Q '위안부' 문제 등 동북아역사문제에 대해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민디 커틀러 지금 미국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일본을 압박하고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일본을 압박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미국은 구체적인 사안을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요구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인데, '진정한 사과'의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한국이 이야기하도록 하여 일본에 전하는 것이다. 중재를 하면서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의사표명을 양국에 하는 것도 미국의 역할이라고 본다. 그 과정에서 서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3자 입장에서 제시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제안까지는 아니어도 '화해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어야 하고, 일본 내각이 채택한 것이어야 한다'는 식의 형식이나 전제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일종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피해자들이 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움직임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아시아 폴리시 포인트(Asia Policy Point)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Asia Policy Point가 어떤 조직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말해 달라.
민디 커틀러 워싱턴 D.C.에 기반을 둔 비영리 연구소로 미국과 동북아시아 국가들 간의 정책적 관계를 주로 연구하는 단체다.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과학·경제 등 제반요소들의 상황 변화를 살피고 있으며 연구를 통한 의견 제시보다는 관계를 해석할 수 있는 정책 도구를 마련하고 있다. 실제로 매주 월요일에 온라인 뉴스레터를 발행해 그 주의 동북아시아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와 자료들을 미리 소개하고 있다. 이후 해당 행사의 배포자료나 녹취록도 공개해 관련 인사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동북아시아의 현안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