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방영된 문화방송의 드라마 '기황후'가 지난 4월 말에 끝났다. 드라마의 인기만큼이나 드라마와 실제 역사 사이 간극을 둘러싼 논란도 심심치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 속 기황후의 이미지가 영웅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2005년 9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한 '신돈'에 등장한 기황후는 비중 있는 배역이 아니었지만 사실상 요녀로 등장했다. 2013년 '기황후'와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에 그려진 기황후(1315~1369?)와 충혜왕(드라마에서는 허구 인물인 '왕유'로 등장)의 모습은 2005년과 다르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이 들 지경이다. 대중드라마는 속성상 대중의 취향과 유행을 민감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미지와 인식의 변화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드라마의 원작인 장영철·정경순이 쓴 장편소설 『기황후』가 그리는 기황후·고려 충혜왕·원 순제와는 달리, 그들에 대한 역사서의 평가는 매우 냉혹하다. 순제의 시호는 혜제(惠帝)인데 이것은 무능한 황제들에게 붙이는 대표적인 시호 중 하나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줄다리기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설정에 기반을 두고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충혜왕을 제치고 기승냥의 사랑을 차지한 원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 즉 토곤 테무르 칸은 고려 곶감을 즐긴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고려 출신 공녀들이 '고려양'을 원 황궁에 전한 것은 사실이다. “고려양이란 원나라 내의 고려풍속을 일컫는 말이었다.”(『기황후』1, 243쪽) 황궁에 미천한 환관과 궁녀 말고 고려 출신 황후가 있다는 점은 고려양이 원나라에 퍼지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에서 기황후의 중요한 권력기반이 고려 왕국과 백여 개 고려촌에 살던 고려 유민이라고 한 것이다. “고려의 무역권을 장악한 충혜왕은 수백 개에 달하는 물류 창고를 확보하고 벽란도를 통해 물건을 원나라에 수출했다. 그 물목들을 기황후가 사들여 원나라 각지는 물론 멀리 대식국(아라비아)과 서역까지 내다 팔았다. 이후 자금들은 기황후가 관장하는 자정원에 쌓였고, 교역을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고려촌은 원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마을이 되어 있었다.”(『기황후』2, 125쪽)
요컨대 소설 속에서 기황후는 고려 말 한류의 주역을 넘어 경세가이자 무역가였다. 그러나 원 제국 말기에 칸 자리를 누가 계승할 지를 놓고 제국의 중심부에서 혼란이 계속된 점은 사실이고, 그 한 축이 기황후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드라마의 묘사를 역사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의 욕망을 투영한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비록 실제 기황후의 모습은 영웅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역사드라마의 묘사도 역사에 대한 다양한 바람과 욕망을 보여주는 데는 효과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