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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관동대지진 진상규명 노력이 거둔 첫 열매
  • 강효숙 원광대학교 강사

지난 2013년 8월 23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1923년 9월 1일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 대지진을 빌미로 일본 군·경·민에 의해 자행된 조선인 학살 사건에 관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사건이 발생했던 1923년 9월 10일,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가 외무대신 조소앙의 이름으로 일본 정부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에게 외무부 발행 131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 항의 공문'을 보내고 난 후, 어언 90년이 지난 뒤에 최초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공식적으로 보인 관심이기에 그 의의가 자못 크다.

줄줄이 공개되는 희생자 명부

이런 영향을 받아서일까? 2013년 11월 19일 국가기록원은 1953년 한국 정부가 조사한 관동 대지진 당시 희생자 290명 명부를 공개하였는데 현재 명부에 대한 대략적인 조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2014년 1월에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잠들어 있던 관동대지진 당시 중국인 희생자 명부가 발견되어 공개되기도 하였다. 희생자 553명, 부상자 58명, 행방불명자 1명을 확인해 주고 있는 이 명부는 중화민국 주일공사관의 인장이 찍힌 공식적인 외교문서다. 지난 3월 6일에는 일본 곤코부사(金剛峯寺) 영패당 지하에 보존되어 있던 '관동대진재앙사자명부(關東震災殃死者名簿)'도 공개되었다. 타일로 만들어진 이 명부의 존재는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어 희생자 수가 5만 4,700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명부에서 영자 이름이 나왔지만 조선인이나 중국인 희생자가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재단이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이후 6개월을 전후하여 조선인·중국인과 일본인 희생자 명부가 연이어 공개되고 있는 것은 현 일본 정부의 극우 경사 현상을 우려하는 움직임 속에서 진실 규명을 향한 의식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발행은 진실규명을 향한 행보의 첫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뤄져 있다. 제1부 「한일관계와 관동대지진의 역사적 의의」라는 주제 아래에서, 강덕상(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당시 어떤 전개과정을 거쳐 일본의 군·경·민이 조선인을 학살하기에 이르렀는지 소개하였다. 이에 대해 야마다 쇼지(릿쿄대학)는 학살 사건은 한일 사회주의자들의 조선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벌인 행위라고 파악하였다. 또 조선인에 대한 악성 루머는 일본 군경이 퍼뜨린 것이라고 밝히고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일본 정부와 시민에게 묻고 있다.

제2부는 「관동대지진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라는 주제다. 필자는 종래 학계에 알려진 피학살 조선인 수 6,600여 명 보다 3배 많은 희생자를 확인한 자료를 새로이 발굴·공개하였다. 이 사료는 익명의 한국 독립운동가가 일본의 각 외국공관에 우편 발송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향후 치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피학살 조선인수가 1923년 11월 28일까지 조사한 결과라면 이 자료는 1924년 3월에 작성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다나카 마사타카(센슈대학)는 현행 역사교과서의 실제 기술을 예로 들어 관련 기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연구하였다. 또 사건 발생 지역 역사교사들이 실태 규명 작업으로 사실 알리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한국학계가 지역 실태를 조사할 때, 지역의 역사교사나 지역사 연구자들과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서종진(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 초중고 검정 역사교과서 구판과 신판 27종의 관련 내용을 비교·분석하여, 사건기술이 감소하는 경향을 밝혔다. 이는 최근 일본 정부의 극우화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인덕(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안연구소)은 재외동포들이 선거권을 갖기에 이르렀지만 아직 한국사로서 재일동포사, 재일동포사로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의 위상은 미진한 상태이며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일본에 정부차원 자료공개 요구해야

요코아미초 공원에 위치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제3부는 「관동대지진과 남겨진 과제들」이란 주제 아래 장세윤은 1923년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가 발행했던 『독립신문』을 중심으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나타난 관련 기사를 개관하였다. 모리카와 후미토(피플스법률사무소)는 학살 사건은 일본 정부가 자국의 계급 대립을 '민족·국가' 대립으로 전환하고 국가에 대한 투쟁을 타국 인민과 싸우는 것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의도한 것이며 일본 정부에 법률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김종수(1923 간토 한일 재일시민연대)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관동대지진 관련 시민 활동을 소개하였다.

이처럼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은 다각적으로 관련 사건에 접근하여 이어지는 연구에 기초 지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여전히 피학살 조선인 수나 매장과 이장 장소, 피학살자 신원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관련정보 공개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한편 한국 측 유족을 찾아 피학살 조선인의 신원을 밝히는 활동도 필요하다.

또 앞으로 일본 공문서 조사와 현지조사, 현장 발굴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는 일본 현지에서 행해야 하고 오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인 연구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종합적이고 객관적 실태조사가 없다면 결국 한국학계의 관련 연구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23년 9월 10일 후,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관련 자료 공개요청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이른 시일 안에 정부차원에서 정보공개를 요청할 것을 연구자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