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해결되지 못한 것들
공준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국은 주요 전쟁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실시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전범들을 처벌했던 것처럼 연합국은 도쿄재판이 아시아에서 전후 정의를 세우는 기준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에는 뉘른베르크 재판보다도 4명 더 많은 28명의 소위 A급 전범이 기소되었고, 사망하거나 소추 면제된 자를 제외한 25명 전원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1년 만에 끝난 것과는 달리 재판 기간도 2년 반으로 길었다.
그러나 이 재판은 성공적인 사례로 기억되지 못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전범 처벌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것과는 달리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승자의 재판’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전범 재판의 결과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일본에 받아들여졌지만 일본은 물론 아시아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왜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일까.
극동국제군사재판소의 모습(출처: Library of Congress)
침략 범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연합국은 전쟁범죄자 처벌을 전쟁의 목표로 삼았다. 특히 침략전쟁 개시와 수행 과정에 책임이 있는 주요 범죄자들을 국제 재판 형식을 통해 연합국이 공동으로 처벌하기로 하였는데, 이것이 뉘른베르크 재판과 극동국제군사재판이었다. 따라서 이 재판에 기소될 피고인들은 모두 침략 범죄, 즉 ‘평화에 반하는 죄’를 저지른 자들로 선별되었다.
극동국제군사재판 준비와 전범 피고인에 대한 기소는 미국이 파견한 수석검사 키난(Keenan)이 지휘하는 국제검찰국(IPS)이 맡았다. 키난은 기소장을 제출한 뒤 모두 진술에서 이 재판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재판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자신만만했다. 국제검찰국의 기소장에 적힌 소인(訴因)은 세 범주로 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평화에 반하는 죄’이고, 그다음은 ‘살인(murder)’이었으며 마지막으로는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하는 죄’가 담겼다.
1946년 6월 4일 모두 진술을 하는 국제검찰국 수석검사 키난
(출처: Harry S. Truman Library & Museum)
먼저 ‘평화에 반하는 죄’는 1928년 만주사변 직전으로부터 1945년 종전에 이르기까지침략전쟁의 계획, 공모, 실행을 다루었다. 각 피고들은 일본이 수행한 여러 전쟁의 핵심 책임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재판은 이들의 책임을 입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살인’은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만 사용된 특수한 범죄 유형으로 불법적인 전쟁 개시 과정에서 군인과 민간인에 대한 살인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인데, 진주만 공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을 통해 진주만 공격에 대한 복수를 달성하려고 했던 미국의 시도는 재판부가 살인에 대한 모든 소인을 기각하면서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재판에서는 난징학살을 비롯한 여러 전쟁범죄가 다루어졌다.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의 여러 점령지에서 저지른 포로 학대나 민간인 학살과 같은 전쟁범죄의 다양한 증거들이 재판에 제출되었다. 다만 ‘인도에 반하는 죄’는 독립된 범죄 유형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승자의 재판’이라는 양면성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재판이 끝나자마자 승자에 의해 강요된 재판이자 정치 재판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재판이 사후법에 의해 실시되어 국제법의 원칙을 위반하였고, 승자인 연합국에 의해 강요되었기 때문에 정당성이 없으며,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었고 재판의 공정성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도쿄재판 부정론’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주장들은 재판의 의미를 쉽게 훼손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들은 뉘른베르크 재판과 같은 법적 뿌리 위에 서 있는 극동국제군사재판이 홀로 받기에는 부당한 측면이 있다.
다만 도쿄에서는 미국의 수석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했기 때문에 미국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재판이 흔들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히로히토에 대한 불기소이다.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명시하고 기소하고자 했던 호주와 같은 연합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처음부터 그를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고 전범으로 조사하거나 재판에 출석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히로히토의 불기소에 대해 재판장 웹(Webb)은 판결문의 별도 의견에 연합국의 이익을 위해 히로히토의 불처벌을 결정했지만, 히로히토가 전쟁을 개시하고 종결하는 권한을 가졌다는 것이 재판에서 입증되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적었다. 프랑스 판사 베르나르(Bernard)는 법정에서의 기소가 불평등하고 부정의하다면서 “특히 히로히토에게서 분명하고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적었다.
기념 촬영을 하는 판사들. 뒷줄 맨 왼쪽이 인도 판사 팔,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프랑스 판사 베르나르, 앞줄 가운데가 재판장인 호주 판사 웹, 그 오른쪽이 중국 판사 메이루아오이다.
(출처: Harry S. Truman Library & Museum)
처벌되지 않은 일본 제국주의
극동국제군사재판에는 총 11개 국가가 초대 받았다. 아시아 국가는 중국과 필리핀, 인도가 각각 판사와 검사를 파견해 재판에 참여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 초대받지 못했다. 일본에 점령되었던 아시아의 다른 여러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침략’은 아시아를 식민 지배하고 있던 서구 국가들을 향한 것에 한정되었다.
중국 판사 메이루아오는 재판 이후 자신의 저술에서 “침략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제국주의의 착취제도와 약탈제도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전범재판에서 지적하지 않았음을 비판했다. 그의 말처럼 일본의 침략전쟁이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연합국 판사들은 일본의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언급하는 것을 회피했다.
재판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장 격렬하게 비판한 것은 인도 판사인 팔(Pal)이었다. 그는 식민지가 여전히 존재하는 국제 현실과 일본의 침략전쟁을 범죄로 보는 연합국의 주장에 모순이 있다고 보았다. 만약 침략이 범죄라면 “모든 국제 사회가 범죄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팔은 서구 제국주의 비판을 위해 일본의 아시아 지배를 인정하고 모든 전범에 대한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을 통해 밝혀진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는 눈감았다는 측면에서 팔 역시 모순이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해결되지 못한 식민지 문제
제노사이드 개념을 만들고 뉘른베르크 재판에 참여했던 국제법학자 렘킨(Lemkin)은 키난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비망록에서 한국과 관련된 범죄를 기소할 것을 권고했다. “미군정이 한국의 절반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문제를 기소할 책임이 미국에 있고, 그것이 미국의 도덕적 위신을 세우는 데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국제검찰국은 조선 총독을 비롯한 식민 지배 관계자들을 전범 용의자로 조사하고 심문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조사에서 조선이나 대만에 대한 식민 지배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었으며 최종적으로 국제검찰국은 식민 지배와 관련된 범죄를 기소하지 않았다.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다룬 침략전쟁은 만주사변 이후의 것만 해당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 시기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해서는 전쟁범죄로 다룰 수 없었다.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재판에서 만주사변 이전 시기로 전쟁을 소급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다. 또 식민지인에 대한 범죄에 대해서 ‘인도에 반하는 죄’를 적용할 가능성은 존재했지만, 국제검찰국은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인도에 반하는 죄를 엄밀하게 다루지 않았고 식민지인에 대한 범죄를 기소하지도 않았다. 결국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식민지 문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전범들이 수용되었던 스가모 형무소 터에 설치된 비석(필자 촬영)
단절된 재판의 유산
재판 결과 침략전쟁을 주도한 일본 전범들에게는 사형과 종신형을 비롯한 중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판 결과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냉전으로의 전환과 한국전쟁의 발발이라는 혼란 속에서 침략전쟁의 주동자를 처벌하여 미래의 전쟁을 막겠다는 극동국제군사재판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한국이나 일본은 물론 아시아 국가들 누구도 재판의 후속 작업을 이어나가지 않으면서, 재판은 그 유산을 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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