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다국적 원폭 피해자 공동체
-그 가능성과 한계를 되새기다
이경미 재단 한일연구소 연구위원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조선인 원폭 피해자
지난 6월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 다녀왔다. 자료관은 폭심지 바로 옆에 건설된 평화기념공원 안에 위치한다. 공원에는 이 밖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원폭돔이나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 각종 동상 및 위령비 등 무려 60개를 넘는 크고 작은 시설들이 존재한다. 작년 5월에 한일 정상이 공동 참배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역시 이 안에 존재한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지도
‘조선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는 ★표시한 곳에 있다
공원 내 시설 중에서도 평화기념자료관의 위상은 남다르다. 2023년도 통계에 따르면 연간 약 200만 명이 방문하며 그 중 약 34%를 차지하는 67만 명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필자가 찾아간 날도 평일이었으나 이미 아침 8시 반부터 줄을 서 있었고, 입장을 기다리는 대다수가 외국인 또는 초중학생 단체였다.
2014~2019년에 리뉴얼 공사를 마친 자료관의 전시 공간은 세 구역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원폭 피해의 실상>(본관 3층), 둘째 <핵무기의 위험성>(동관 3층), 셋째 <히로시마의 발자취>(동관 2층)이다. 이 중 ‘조선인 원폭 피해자’ 관련 전시는 3곳에서 확인된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전시 지도
‘조선인 원폭 피해자’ 관련 전시는 ○표시한 곳에 있다
하나는 <원폭 피해의 실상> 중 세 번째 섹션 <영혼의 부르짖음>(3-1)의 마지막 패널 <고향을 떠난 땅에서>(3-1-7)이다. 나머지는 <히로시마의 발자취> 중 벽면 패널과 터치패널 2곳에 마련된 <동원되는 사람들>(6-1-2-2)이다.
외국인 피해자 전시 공간, <고향을 떠난 땅에서>
<영혼의 부르짖음>에 마련된 7개 패널 중 6개가 ‘일본인 피해자’ 관련 전시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공간에 ‘외국인 피해자’에 관한 패널이 있다. <고향을 떠난 땅에서>는 “원폭은 국적이나 민족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들을 덮쳤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그 말을 증명하듯이 패널에는 ‘조선인’ 피해자는 물론 ‘대만, 중국, 동남아, 독일, 러시아, 미국’ 등 지금까지 밝혀진 거의 모든 나라의 피해자들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로서 히로시마의 부대에 배속되었다가 피폭당한 조선인 피해자 곽귀훈 씨 관련 전시가 있다. 이 전시는 벽면 패널 앞에 마련된 유품 전시대에도 보이는데, 배속된 부대에서 받은 ‘군대수첩’과 ‘제대증명서’, 그리고 ‘이재(罹災)증명서’이다. 이것들이 후일 일본 후생성으로부터 ‘피폭자 건강수첩’을 발급받을 때 중요한 증빙이 되었다.
외국인 피해자 패널 <고향을 떠난 땅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로서 피폭당한 곽귀훈 씨 관련 패널이 중간에 보인다(위, 아래)
다국적 공동체의 빛과 그림자
이처럼 <고향을 떠난 땅에서>는 많은 외국인 피해자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이들이 히로시마에 있게 된 배경에 스며든 ‘정치성’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얼버무리고 있다. 우리는 전시를 통해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있으나 이들의 삶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그저 알 듯 말 듯 할 뿐이다.
조선인 피해자를 예로 들면, 전시에서 곽귀훈 씨가 ‘징병’된 사실은 알려주지만 ‘강제’라는 말은 지워져 있다. 이는 동관 2층 패널 <동원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패널에서는 조선인들이 피폭당한 역사적 배경으로서 한국병합(1910)과 국가총동원법(1938)을 언급하였지만, ‘강제성’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연행” “강제노동”이라는 문구가 쓰인 곳은 단 하나, 터치패널의 설명뿐이다.
“1938년의 국가총동원법에 의거하여 일본정부의 노무동원 계획 안에 조선인도 편입되었습니다. 1939년부터의 ‘모집’, 1942년부터의 ‘관알선’, 1944년부터의 ‘징용’이라는 세 가지 방식이 있었습니다. …전후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진 측면에 주목하는 사람들에 의해 ‘강제연행’이나 ‘강제노동’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과연 ‘조선인’에 대해서만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정치성’은 모든 피해자들의 삶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전후 ‘유일 피폭국’으로서의 자아 형성에 급급했던 일본에서 원폭 피해자 공동체는 ‘일국적’이었다. 조선인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 피해자들은 시민 운동 차원에서 조망되었을 뿐, 가시화되지 않은 존재였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고 본다면 자료관의 전시는 분명히 공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재조명한 의의가 있다. 그런데 그 빛이 ‘불편한 진실’을 얼버무린다면 기껏 열린 ‘다국적 공동체’도 그 가능성을 닫고 역사 갈등의 장이 되고 말 것이다. 한편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귀를 닫는다면 우리의 대응 역시 빛보다 그림자를 불러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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