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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동북아 영토 질서의 해법
  • 최철영 대구대 법학부 교수

미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동북아 영토 질서의 해법

 

최철영 대구대 법학부 교수

 

 

인류 역사 최악의 사건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은 잔혹하고 처참했다. 하지만 전쟁을 종결하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전범국가인 일본에 관대했고 내용은 부실했다. 평화조약으로 달성해야 하는 일본과 연합국 그리고 이해관계국 간의 평화적 관계 회복과 전후 배상은 지금까지 미완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정의에 기초한 규범적 영토 질서를 최종적으로 담보하는 데도 실패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 영국의 처칠 수상은 19452월 크림반도의 얄타에 모여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탈취한 모든 영토로부터 추방되어야 한다는 점에 합의하였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이러한 얄타합의를 왜곡한 채 체결된 불안한 전후 평화조약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 체결의 의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19519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 있는 전쟁기념관 오페라하우스에서 대일평화조약이라는 명칭으로 체결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당사국 중 미국을 포함한 48개 연합국이 전범국가 일본과 전쟁 상태를 공식적으로 종료하는 국제법적 합의였다. 하지만 일본이 도발한 전쟁범죄의 가장 큰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소련은 미국이 주도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서명 당사자에서 배제되었다.

흥미롭게도 미국과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체결한 날 오후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직선거리로 약 3km 정도 떨어져 있는 프레시디오 군사기지에서 양자조약인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였다. 아시아·태평양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대결 당사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이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조약의 체결과 동시에 관계정상화를 넘어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연합국으로서 미영중소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질서를 포기하고, 적대국이었던 일본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냉전적 이념 대결을 구조화하는 소위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구축하였다.

 

사진1_일본 요시다 시게루 총리 대일평화조약 서명(출처 일본외무성, httpswww.mofa.go.jpfiles000092355) 사본

일본 요시다 시게루 총리 대일평화조약 서명
(출처: 일본외무성)

 

 

얄타 체제의 붕괴와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창설

 

샌프란시스코 체제 이전에 19452월 미영중소 4대국은 강대국을 중심으로 전후 세계질서를 형성한다는 얄타 체제를 구축하였다. 실제로 전후에 설립된 보편적 국제기구로서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는 미영중소불의 5대 강대국에게 영구적인 이사국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이와 함께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에 관한 조치 채택에 관하여 다른 이사국들에는 인정되지 않는 절대적 권한인 거부권(veto power)을 부여하였다. 그런데 얄타합의의 기저에는 194311월 미영중 3국이 합의한 카이로 선언이 놓여 있다. 카이로 선언은 한국의 독립에 대한 연합국의 확고한 합의와 함께 일본이 폭력과 탐욕에 의해 탈취한 모든 영토로부터 추방당할 것임을 명시하였다.

하지만 전후 아시아 지역의 평화체제 구축, 전쟁 당사국을 포함하는 이해관계국 간의 배상, 동북아 지역 국가의 영토주권 범위 획정을 최종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는 일본의 폭력과 탐욕에 의해 영토주권을 침해당한 소련과 중국 그리고 한국이 직접 당사국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미소영중 강대국 간의 협력이 아닌 미영과 중소 강대국 진영 간의 대결 속에 반공 안보 체제 형성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영중소의 협력 관계를 중심으로 평화적 세계질서를 형성한다는 얄타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사진3_얄타회담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좌)처칠수상, 루스벨트 대통령, 스탈린 당서기장 사본

얄타회담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처칠 수상(좌), 루스벨트 대통령, 스탈린 당서기장(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영토조항 문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제2조 영토조항은 a항에서 일본이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하는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b항에서 (중국과 관련하여) “대만과 팽후제도에 대한 모든 권리, 그리고 c항에서 (당시 소련과 관련하여) “쿠릴열도 및 인접 섬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국, 중국 그리고 소련을 국가승계한 러시아에 대하여 지금까지 철 지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3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북아 당사국이지만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체결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나라들이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직접 협상 당사자로서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의견을 반영할 수 있었지만, 한중러 3국은 직접 협상할 기회도 없었고, 최종적인 합의의 당사자에서도 배제되었다. 영토의 범위라는 국가의 사활적 이익과 관련된 조약을 피해 당사국을 빼고 체결함으로써 일본이 동북아 지역에서 영토주권 질서의 혼란과 갈등을 조성할 수 있는 빌미가 마련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제3국에 대한 대세적 의무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국제법적 근거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 주장에 있어 동 조약에 의존하는 비중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영토 문제를 법적으로 심리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빈번히 자신에게 부탁된 사건에 대하여 영토와 관련된 조약을 최우선으로 적용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특정한 조약을 당해 조약의 당사국이 아닌 국가에 대하여 적용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평화조약의 경우 일반적으로 새로운 전후 국제체제를 형성하는 조약으로써 제3국의 동의 없이 제3국에 대하여 의무 또는 권리를 창설할 수 있다. 객관적 국제체제를 창설하는 조약에 제3국이 따라야 한다는 대세적 의무(erga omnes) 때문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미국에 의하여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에 초대받은아시아 지역 이외의 국가들이 주축이 되어 합의한 조약이다.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아시아 지역의 직접적 이해관계국이 자국의 영토 처분을 포함하는 새로운 동북아 영토주권 질서를 형성하는 조약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평화조약은 직접적 이해관계국이 참여하여 이행을 보장, 감시 또는 관찰하는 정치적 그리고 법적 메커니즘이 상호 복합된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접적인 이해관계국들이 배제된 채 사실상 미국과 일본이 합의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모호한 영토조항이 동북아시아에서 객관적 영토 질서를 형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1951815일과 918일 두 차례에 걸쳐 명시적으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효력을 부정하였고 이러한 입장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일본의 해석에 기초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영토 질서는 정의롭지도 않고 동북아시아의 일반적인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사진4_한일양국 행정관할지도-전후 일본을 통치한 연합국 총사령부는 각서(SCAPIN) 제677호를 통해 독도를 통치적, 행정적 범위에서 제외(출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독도아카이브) 사본

한일 양국 행정 관할 지도-전후 일본을 통치한
연합국 총사령부는 각서(SCAPIN) 제677호를 통해 독도를 통치적, 행정적 범위에서 제외
(출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독도아카이브)

 

더욱이 국제관습법을 성문화한 1969년 비엔나 조약법협약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영토조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국제질서에 관한 일체의 합의로서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의 문맥에 기초해서 해석되어야 한다.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지역으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는 카이로 선언과 일본의 영토는 연합국에 의하여 결정된 범위에 한정된다는 포츠담 선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영토조항 해석의 기본적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관할 범위에서 독도를 명시적으로 제외했던 연합국총사령부 명령문서(SCAPIN)의 결정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영토조항의 명확한 해석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동북아 영토주권 갈등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한계

 

조약은 당사국 간의 문제에 대하여 상호 간에 이행하여야 할 사항을 자발적으로 합의함으로써 조약 당사국 모두에게 가장 적절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당사자 간의 관계를 구조화한다. 따라서 조약의 존재는 분쟁이나 갈등 해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영토조항은 한일 간 영토 갈등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 영토주권 질서를 창설하고 있지 않다. 독도를 포함해서 영토와 관련된 한일 양국 간에 체결된 조약도 없다.

ICJ의 영토주권 사건에 대한 접근방법론을 분석해 보면, ICJ에서 영토주권 분쟁을 심리하는 경우 영토주권의 사실적 근거로서 역사적 근거, 지리적 근거, 경제적 근거, 문화적 근거보다 국제법적 근거를 우선 적용하여 판단하고 있다. 이 경우 ICJ는 국제법적 근거로서 조약, 기존 행정관할경계 유지 원칙, 실효적 지배의 원칙을 3단계의 순서로 적용한다.

ICJ의 조약 접근론에 따르면 동북아 영토주권 문제도 비록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불완전한 국제평화조약이지만 조약 체계의 불완전성을 이유로 한 적용 배제보다는 당사자들이 제시한 다양한 주장의 근거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해석 방법을 동원해서 적용할 것이다. 국제사회는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국제법원의 접근법에 따라 독도 영토주권과 관련 있는조약으로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적용을 통한 독도의 영유권 귀속 결정이 합리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동 조약의 영토조항은 한국의 독도에 대하여 소위 미해결의 해결을 위해 언급을 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음을 유의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동서냉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미일 군사동맹체제 형성의 필요성 등 고도의 정치적 요인으로 인하여 조약에 의한 객관적인 동북아 영토주권 질서를 확립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독도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샌프린시스코 평화조약을 기초로 독도 문제를 ICJ에서 사법적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은 형식적으로는 평화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동북아 국가들 간에 전면적인 갈등과 분쟁을 촉발하는 위험한 해법이다.

 

사진변경_국제사법재판소(ICU)(출처 국제사법재판소 사이트) 사본

국제사법재판소(ICU)(출처: 국제사법재판소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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