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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운명』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 박장배 재단 한중연구소 연구위원

중국의 운명과 2차 세계대전의 종전

 

박장배 재단 한중연구소 연구위원

 

 

혁명 건국의 필독 교재

 

중국에서는 매년 93일을 항일전쟁 승리기념일로 삼아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중일전쟁이 종반에 접어들던 1943310, 중화민국 최고지도자 장제스(蔣介石, 1887~1975)는 항전 수도인 충칭에서 중국의 운명(中國之命運)을 출간하여 중국의 전후 구상의 일단을 드러냈다. 이 책은 항전 후기와 항전 종결 후, 국민당의 건국 강령으로 인식되었고 국민당과 각급 학교의 필독 교재로 지정되었다. 1940년대 후반에는 한국에서도 번역되었다.

 

사진1_『중국명운(中國命運)』, 장제스

장제스, 『중국의 운명』, 정중서방, 1944
[초판은 1943년]

 

이 책은 국민당이 쑨원의 삼민주의를 계승한 후 나온 가장 중요한 저작이다. 장제스는 쑨원의 계승자로서 입지를 굳힘과 동시에 영국과 중국공산당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영국은 그의 신랄한 제국주의 비판을 불편하게 여겼고, 중국공산당은 중국혁명의 주도권이 국민당에 있다는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 책은 출간 시기, 책의 내용, 영향과 파장 등 다방면에서 흥미롭다.

 

 

불평등조약 폐지와 평등조약의 체결

 

이 책은 1중화민족의 성장과 발전에서 8중국의 운명과 세계의 전도까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불평등조약의 폐지와 관련된 것이 3개 장으로, 전체 222쪽 중에 딱 절반을 차지한다. 사실 이 책의 저술은 194210월에 미영 양국이 중국에서 치외법권 및 관련 특권을 폐지한 사건과 긴밀하게 관련된다.

1941127일 일본이 돌연 미국의 해군기지 진주만을 습격하여 태평양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그 다음 날 중화민국 정부도 일본에 선전포고를 발표했다. 루스벨트는 1231일 장제스를 태국, 베트남 등을 포함하는 중국 전구의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지명하였다. 미일 개전 후 중국 전장의 항일투쟁은 직접 미국 전장의 압력을 경감시켰고 미국의 중요 이익의 소재가 되었다. 194211일 미영소중을 중심으로 하는 26개국은 <연합국 선언>에 서명했으며, 국제적 지위가 높아진 중국은 최초로 ‘4의 일원으로 세계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194311, 장제스는 루스벨트, 처칠과 함께 카이로 회담에 참석했다.

 

카이로회담

카이로 회담(1943.11.22~26, 출처: 위키피디아)

 

사실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항일전쟁 8년 동안 막대한 희생을 감내하며 총력전을 수행했다.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 축을 차지한 장제스 정부는 미국과 영국에 국민혁명의 주요 목표인 불평등조약 폐지를 요구했다. 1943111일 미영 양국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요구에 응하여 재중국 특권을 폐지하고 중국과 새로운 평등조약을 체결하였다. 장제스 정부는 형식상 근대 이래 제국주의가 강요한 불평등조약을 폐지한 것이다.

장제스는 이 외교적 승리에 고무되어 불평등조약 폐지의 의미를 설파하고 자신의 국가건설[현대화] 계획을 천명하였다. 중국 국민당은 쑨원에서 장제스까지 줄기차게 삼민주의를 실현하고 세계 대동을 촉진한다국가건설추진 방침을 견지하고 있었다.

 

 

장제스의 국가건설 계획 발표

 

장제스는 중국의 운명5~7장에서 국가건설 문제를 대거 설파했다. 그중 5장에서 국가건설의 5대 중점 항목을 제시했다. 여기에서 장제스가 제기한 문화, 경제와 국방이라는 삼체합일의 국가건설 계획은 국내 차원에서 심리, 윤리, 사회, 정치와 경제 5항 건설로 나뉜다. 윤리 건설 등에는 유교 사상에서 끌어온 것이 많았다. 경제건설은 공업화를 당면한 급무로 자력갱생 실현을 요구했다. 경제건설에 관해 장제스는 반드시 [쑨원의 건국방략중의] 실업계획을 준칙으로 삼을 것을 요구했다. 이것들은 그럭저럭 새로운 국가를 위한 상부구조를 창조해냈지만, 현대국가의 내실이 극히 취약한 당시 중국의 현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레이 황, 장제스 일기를 읽다, 2009, 푸른역사, 15)

중국의 운명의 절대 부분이 불평등조약 폐지의 중대한 의의와 국민당의 국가건설 주장을 선양하는 데 있었다. 이는 제국주의 비판을 통해 청년들이 공산당에 경사되는 것을 막고 국가건설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저작의 실질적인 최종 목적은 국민당의 확고한 집권을 위해 이데올로기를 구축하고 장제스 통치의 합법성을 변호하는 데 있었다. 이 책에는 국민당이 없으면 중국은 없다”, “중국 정치의 전도는 국민당에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 표현을 집중적으로 비판했고, 1943825해방일보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이 없다는 사론을 발표했다. 이를 마오쩌둥은 1950년에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이 없다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천보다

천보다(陳伯達) 등, 『중국의 운명」을 평함』, 신화서점진차지분점, 1945.

 

 

중국식 현대화의 연속성

 

80년 전에 쓰였지만, 이 책은 여전히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쑨원의 ‘11사상을 계승하고 중국 경내 소수민족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장제스의 중화민족론은 기본적으로 쑨원의 중화민족개념을 계승한 것이다. 책 출간 당시 중국공산당은 이를 대한족주의(大漢族主義)’의 발로라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2024년 현재 중국에서 중화민족 공동체의식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또 현재 중국에는 유교사회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학사상이 사회건설에 활용되고 있으니 당시 장제스의 유교 인식과 활용이 낡은 것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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