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갈등과 협력
- 2024 일본근대산업유산 국제학술회의 참관기
지난 7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회의에서 일본이 신청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사도섬에 조선인 노동의 실태를 드러내는 전시 시설이 마련되기도 했지만, 이 전시에는 강제성을 명시하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과 그 극복 양상을 국제적 사례를 통해 검토하기 위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2024년 11월 19일 재단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회의에서는 예상되는 추가 등재 후보에 관한 검토를 시도하고,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여러 국가 간의 갈등과 협력 사례를 통해 한일 양국의 문제를 국제적 시각에서 이해하기 위한 학문적 소통을 펼쳤다.
세계유산 등재의 국제적 사례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춘천교대 정용숙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점령지 외국인 노동자를 동원해 비인간적인 노동을 강요하고, 인종주의 정책에 따라 노동자를 차별적으로 대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 이들을 외국인 고용 전통의 연장선으로 간주하며 고통을 외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독일 학계와 지역 사회의 노력으로 강제 노동의 역사가 재조명되었고, 2000년대 보상 논쟁을 계기로 제도적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도 아울러 설명했다.
다음으로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사가와 쿄헤이 교수는 일본이 1910년대부터 식민지 조선인을 노동자로 적극 채용했으며, 1939년 노동 동원 정책이 시작될 당시 이미 조선인 노동자 관리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 기존 조선인 노동자들이 새로 동원된 이들을 지도하기도 했다는 점을 밝혔다.
첫 번째 세션의 마지막 발표자인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정혜경 대표연구위원은 2015년 메이지 산업유산 등재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산업유산 등재를 역사와 문화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전환하며 갈등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역사 부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한일 양국 민중이 역사적 사실을 공유하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와 세계유산위원회를 통해 공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근대산업유산 국제학술회의 참가자들
일본의 산업유산문제를 바라보는 국제적 시각
두 번째 세션의 첫 번째 발표자인 니가타 국제정보대학 요시자와 후미토시 교수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지역 차원에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기리려는 노력 또한 주목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1980~1990년대 아이카와 지역 연구자와 운동가들은 조선인 강제 노동의 실상을 밝혀내는 데 기여했지만, 니가타현 내 다른 강제 노동 사례는 여전히 충분히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런던대학 니콜라이 욘센 교수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논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500명 이상의 한국인이 강제 노동에 동원된 사실을 일본이 부인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2015년 메이지 산업유산 등재 당시 강제 노동의 존재를 인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20년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 개설 시 이를 번복했고, 사도섬의 전시 역시 강제 노동과 민족 차별을 부정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 세션 마지막 발표에서 호주 멜버른대학 데이비드 파머 명예연구위원은 일본 제국의 강제 노동에 대한 역사 검열은 지난 80년동안 계속 진행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패전 직후 관련된 문서를 은폐하는 데서 시작한 역사 검열은 한국인 노동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한국인 노동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그 노동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나아갔고, 최근에는 한국인이 의사에 반해 노동했다는 점을 수용하면서도 그 역사를 축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회사를 하는 재단 정용상 사무총장
일본 산업유산의 등재 전망
마지막 세션에서 경성대 강동진 교수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일본은 강제 동원 논쟁을 회피하기 위해 명칭 변경, 시기 축소, 구성 유산 조정 등의 전략을 반복해 왔다고 지적했다. 사도광산이 에도 시대에 한정해 등재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되며, 조선인 노동자에 대해 “강제” 대신 “가혹한 노동 환경”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일본의 추가 등재 시도가 예상되는 아시오광산, 구로베댐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재단 현명호 연구위원은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아시오광산에 2,4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으며, 중국인과 연합군 백인 포로 등도 강제 노동에 동원된 사실을 감안해, 향후 등재 추진에는 국제사회와 공동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단 전영욱 연구위원은 구로베 3댐 건설 당시, 1940년 1월 9일 발생한 눈사태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11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포함됐음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밝혔다.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주로 조선인 강제 동원 문제를 부인하는 일본의 전략에 대해 비판이 가해졌다. 그리고 향후 등재 시도가 예상되는 아시오광산, 구로베댐 지역을 둘러싼 대응 방안 모색 등 일본의 산업유산 등재 정책 문제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동시에 독일의 산업유산과 강제 동원을 둘러싼 갈등 사례를 확인했고, 이를 통해 산업유산을 둘러싼 역사 갈등 문제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논의에 참여한 많은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일본 산업유산 문제를 보편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방안을 모색하여 국제적인 연대를 넓혀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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