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The Good Earth》의 작가,
펄 S. 벅 하우스를 가다
고아들의 집, 펄 S. 벅 하우스
10월 중순 필자는 뉴욕시립대 시아밍(夏明) 교수와 함께 펄 S. 벅 하우스를 찾았다. 벅의 중국식 이름은 싸이전주(賽珍珠), 한국식 이름은 ‘최진주’다. 그만큼 그녀는 중국, 한국과 인연이 깊다. 벅에 대해 우리는 소설 《대지 The Good Earth》의 작가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알고 있다.
벅이 생전에 살던 그린 힐스 농장(Green Hills Farm)은 뉴욕에서 자동차로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농장은 펜실베이니아주 서남쪽 벅스 카운티(Bucks County)의 조용한 시골에 위치한다. 농장에 도착하여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은 벅의 무덤이다. 무덤을 벗어나 길을 나서면 앞쪽에 두 동의 건물이 나타나는데 왼쪽 건물은 웰컴센터로 벅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벅의 집은 3층 건물로 1층에는 주방과 거실, 서재가 있다. 2층에는 벅의 침실과 한국인 양녀 줄리아 헤닝의 침실이 있다. 3층도 아이들이 거주했던 방이라고 하는데 개방하지 않았다. 집 안으로는 주방을 통해 들어가는데, 문 위에 커다란 종이 걸려 있는 것이 특이했다. 안내자의 말로는 아이들에게 식사 시간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 한다. 주방에는 조리대와 오븐, 커다란 식탁이 있다. 곳곳에 아이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풍경이 그려진다.
웰컴센터
펄 벅 하우스
창강 변의 쩐장은 나의 중국 고향
벅은 1934년 중국을 떠나기 전까지 40년간 중국에서 살았다. 그녀는 창강 변에 위치한 쩐장(镇江)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벅은 중국인 유모에게 중국어를 배웠으며, 중국 아이들과 놀았다. 이는 벅이 중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벅은 폭동이 일어나 목숨의 위협을 받은 후에야 자신이 중국인이 아니라 백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서양인 선교사의 딸로 따돌림을 당한 기억은 훗날 인권운동에 헌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벅은 《대지》 외에도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85편의 작품을 남겼다. 벅의 집에는 청화백자, 서화, 관음보살상 등 중국식 소품이 가득하다. 벅은 평생동안 중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졌으며, 미국인들이 중국을 이해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벅은 항상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 정부는 그녀를 ‘미국 문화 제국주의자’라고 비판하며, 그녀의 요구를 거부했다. 1972년 벅은 닉슨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고자 했다. 벅의 집에는 당시 캐나다 중국대사관에서 벅에게 보낸 회신이 남아 있다.
“귀하는 오랫동안 작품에서 신중국 인민과 지도자에 대해 왜곡, 모욕, 비방하는 태도를 취하였기에, 우리는 귀하가 중국을 방문하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벅은 절망했고, 그 다음 해인 1973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벅과 아이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 한국
벅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 《살아있는 갈대 The Living Reed》의 서문에서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했다. 벅이 이와 같이 칭찬한 이유는 1960년 경주를 여행할 때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하나는 까치밥과 관련된 일화이고, 다른 하나는 소를 배려해 짐을 나눠지고 가는 농부에게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벅은 한국에 대한 여러 권의 소설을 썼고, 한국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린 힐스 농장에서 한국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벅 무덤 옆에는 한미혜라는 아이의 무덤이 있다. 묘비에 “8살 한미혜의 유해가 이곳에 뿌려졌다”라고 써 있다. 웰컴센터 입구에는 줄리아 헤닝이 착용했던 여성 한복과 호랑이 병풍이 전시되어 있다. 벅의 침실에는 옥색 한복과 버선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국 방문 시 착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침실에 전시된 서울시 명예시민증에 쓰인 그녀의 이름은 ‘최진주’다.
벅의 침실에 전시된 한복과 버선
1962년 4월 30일 노벨상 수상자를 위한 초청 행사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벅에게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드니, 미군은 철수하고 옛날처럼 일본이 한국을 맡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벅은 “그들은 서로 같은 인종처럼 보여도 불공정했던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서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 힘이 있었던 쪽에 다시 통제권을 주겠다는 소리는 마치 미국이 예전처럼 영국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소리와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벅의 강경한 태도에 케네디도 농담이었다며 물러섰다고 한다.
펄 S. 벅은 한국전쟁 고아들의 어머니였으며, 미국사회에 한국을 이해시키고자 했던 한국의 진정한 친구였다.
벅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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