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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호 뉴스레터
선린우호의 '한·중·일 미래'를 꿈꾸며
기고 선린우호의 '한·중·일 미래'를 꿈꾸며 근년 들어 한·중·일 3국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한·중 두 나라는 정상이 상호 방문하는 등 교류와 관계 증진이 나름 이루어지고 있으나 한·일, 중·일 사이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 독도와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 등 영토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각국의 국민감정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역사적으로 특히 근대 이후 한·중·일 3국은 식민 지배와 독립 투쟁, 침략 전쟁과 구국 항전, 냉전시기 전쟁과 이념 대결이라는 불행한 단계를 거쳤지만 국교 재개 이후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되어 상호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어 왔다. 물론 관계 정상화 이후에도 대내외적 환경 변화로 3국의 대립과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약진에 위기를 느낀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을 반성하기는 커녕 미국의 묵인 하에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고, G2 반열에오른 중국은 국력 신장에 따른 ‘대국화(大國化)’를 지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사이에 낀 분단국가 한국은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한 세기 전 국권상실의 악몽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열린 자세와 자각이 필요한 3국 관계그렇다면 한·중·일 3국이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공존, 선린우호의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해법은 없는 것일까? 만약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과거사나 영토문제로 인한 갈등 원인이 각국의 역사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해결 역시 역사인식의 변화를 통해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인식이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고 처한 상황과 관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것이기에 단기간에 이를 변화시키거나 남에게 그 변화를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배타적 국가이익을 대표하는 정부가 전면에 나설 경우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여론을 악화시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시민사회나 민간 차원에서 국경을 넘어선 학문적 교류와 연대를
손준식 중앙대학교 교수
"재외한인은글로벌 네트워크의 중요한 연결고리"
인터뷰 "재외한인은글로벌 네트워크의 중요한 연결고리" 9월 26일 연세대학교 학술정보관에서 재단이 후원한 재외한인학회 추계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학술회의에는 여러나라에 살고 있는 재외한인들이 참여해 ‘글로벌 한인사회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 홍면기 정책기획실장이 박광성 교수를 만나 세계화 시대 한국이 안고 있는 다문화 수용 문제와 통일에 관한 재외한인의 역할과 시각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_편집자 주박광성 교수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이린시(海林市) 출신으로 중국 연변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상임이사, 북경시사회학회 이사, 재외한인학회 해외이사를 맡고 있다. 2012년에는 중국교육부에서 인증한 ‘신세기 우수인재’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대표저서로는 《세계화시대 중국 조선족의 초국적 이동과 사회변화》(2008), 《중국조선족사회의 변화-1990년대를 중심으로》(공저,2006) 등이 있다. 재외한인학회 추계학술회의 주제는 “재외한인 네트워크에서 글로벌 한인 역사문화 네트워크로”다. 이번 학술회의 의의는? 한국·중국·미국·일본·뉴질랜드·몽골, 이렇게 서로 다른 사회 환경에서 성장하고 학술 배경이 다양한 학자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연구 주제를 발표하였다. 이처럼 재외한인학회는 한국 학자들이 중심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연구하는 한인 학자들이 교류하는 장이다. 재외한인학회 연구주제를 한인으로 국한하지 않고 소수 집단과 연관 있는 사회과학 주제로 확장하여, 한인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면 진정한 글로벌 네트워크로서 세계적인 공헌을 하는 중요한 창구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역사문화 네트워크’라는 화두다. ‘역사문화 네트워크’는 아직 개념 정의를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한 분야다. 국제 학계의 초국적 연결망 연구가 주로 경제·사회연결망에 집중하지만, 역사와 문화에 초점을 둔 연구로 지평을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재외한인끼리 모이는 이번 학회는 어찌 보면 폐쇄적 모임인데 여기서 개방적인 네
인터뷰 · 진행 ┃ 홍면기 정책기획실 실장
한국-카자흐스탄 정책협력포럼중앙아시아 유라시아 학계와 새로운 협력을 찾아서
연구소 소식 한국-카자흐스탄 정책협력포럼중앙아시아 유라시아 학계와 새로운 협력을 찾아서 재단은 2014년 한국-카자흐스탄 정책협력포럼을 9월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개최하였다. 본 포럼은 2011년 카자흐스탄의 투르크아카데미와 학술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세 번째 열린 공동학술행사다.올해 포럼의 대주제는 “한-카 역사문화적 유대”였다. 11일은 전근대 시기를 중심으로 ‘역사적·정신적 가치와 통합 : 한국과 카자흐스탄’, 12일은 근대 시기를 중심으로 ‘한-카 교류와 협력 :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소주제로 나누어 진행됐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동향 및 협력 방안을 포함하여 다양한 세부주제들이 논의됐다.중앙아시아학·유라시아학 네트워크 구축 논의 필요올해 포럼의 성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투르크아카데미의 목적과 지향에 대해서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독립 후 자국의 정체성 확보와 이웃의 구 러시아권 국가들과 연대하는 것을 목표로 투르크 민족의 역사성과 투르크주의에 관한 연구를 전담하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을 설립했다. 투르크아카데미는 이러한 취지로 만들어진 신생 연구기관으로서 유라시아 대륙의 다양한 학술기관들과 학문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재단이 첫 파트너이며 대한민국학술원, 서울대학교와 같은 국내 학술기관들과 교류하는 것에 관해서도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둘째로, 올해 포럼을 통해 중앙아시아 학계와의 네트워크 확대에 대해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카자흐스탄 발표자들은 러시아와 중국의 지역패권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두 나라와 뗄 수 없는 외교적·경제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는 투르크아카데미의 유라시아 역사 인식이 ‘탈(중국)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수평적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재단의 역사인식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 성과는 이 사업을 오랫동안 계속 추진하는 데 필요한 더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점이다. 두 기관 모두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면서도 대외적으로 경쟁
이정일 정책기획실 연구위원
타국에 익숙해지고 친해질 때
연구소 소식 타국에 익숙해지고 친해질 때 몇 해 전 1년간 일본에 머물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10여년에 걸쳐 4번쯤 가 본 교토(京都)에 또 갔었는데 어린 시절 처음 갔을 때는 절이나 건물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교토 여행은 ‘절이 절이고, 탑이 탑이지 뭐’하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런데 다섯 번째 방문부터는 달랐다. 하나 둘씩 머릿속에 지식이 쌓인 탓인지 도시의 거리와 구조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 나 혼자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해 1년 동안 교토를 8번 찾아갔다.지난 9월 하순에 있었던 베트남행은 4번째 방문이었고, 베트남 사회과학원과의 포럼은 5번째였다. 2010년 두 기관이 해마다 교대로 회의를 개최하기로 약속을 하고 난 이후 몇 몇 베트남 학자들은 베트남과 서울에서 반복해 만나게 되면서 이제는 얼굴과 이름이 익숙해지기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이번 회의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하노이에서에서 일어날 일을 상상할 수 있었다. 물론 거리 모습과 자연 경관, 도심의 소음들도 생각났으나 무엇보다 베트남 학자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 이전 방문 때 느끼지 못한 설렘을 맛봤다.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회의 주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하노이 서호(西湖)에 있는 진국사(鎭國寺)와 석탑지금까지 재단과 베트남이 함께했던 회의에서는 솔직히 학문적으로 그다지 깊이 있는 토론을 하지 못했다. 우리와 베트남 참가자 모두 상대 나라 역사나 정치에 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회의여서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절이 절이지 뭐’하는 무감동 상태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준비 단계부터 하나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부터 발표자는 상대방에게 자국의 상황을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듣는 이는 부족한 부분을 질문으로 보충하려고 애쓰는 회의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발표자와 토론자 사이의 친근감도 더 생길 것 같았다.하노이를 떠올리며 준비한 회의에서 ‘진심’을 나누다이번 회의는 3개 세션으로 구성
최운도 정책기획실 정책팀장
겨레의 꽃, 유관순
역사인물 겨레의 꽃, 유관순 유관순(1902년 12월 16일~1920년 9월 28일) 열사는 천안의 평범한 집안에서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부친 유중권은 온 집안이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조상에 대한 의무를 지키기 위해 홀로 개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남 유우석을 기독교 학교인 공주 영명학교로, 이화학당으로는 차녀 유관순을 진학시키는 등 기독교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1914년경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편입학한 유관순은 1918년 이화여자보통학교 고등과 1학년에 진학하였다. 당시 이화학당에서는 이문회(以文會)라는 자치활동기구에서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시국강연회를 열었고 학생들이 자주자립 역량과 애국애족정신을 키우도록 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유관순은 어느 날 밤 친구들과 물감으로 태극기를 그려 학교 곳곳에 붙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한 때 학교가 소란해졌으나 태극기 그리는 법을 제대로 배운 사건이었다.3ㆍ1운동과 아우내 만세운동1919년 3월 1일, 유관순은 5명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3·1운동에 직접 참여하였다. 3월 5일 학교 측이 만류하는데도 학교 담을 넘어 학생단 연합시위에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다. 이때 경무총감부에 붙잡혔으나 곧 풀려났다. 만세운동이 날로 격해지자, 일제는 3월 10일 전국 각 급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고향으로 내려온 유관순은 조인원(교회 속장, 독립운동가 조병옥 박사 부친), 유중무(교회 전도사, 유관순의 숙부) 등과 상의하여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을 준비했다.유관순은 3·1만세운동 여파로 주민을 감시하는 데 혈안인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연락책을 맡아 인근 부락의 대표자들과 만세운동 거사를 상의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사촌언니 유예와 함께 거사에 쓰일 태극기 제작에 온 힘을 기울였다. 만세운동을 하기로 한 1919년 4월 1일 유관순은 아우내 장터 입구에서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고 오후 1시에 마을 어른들과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일본 헌병대를 향해 나아갔다. 성난 군중들과 일본 헌병들의 쫓고 쫓기는 혈투
박충순 백석대학교 유관순연구소장
프랑스인이 본 한국, 한국인
기고 프랑스인이 본 한국, 한국인 ▲ 재단의 외국인 역사아카데미에 참여한 세계각지에서 온 외국인들2004년 5월 23일,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한 고요한 휴양 도시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다수의 프랑스 사람들에게 본국을 알리는 데 큰 성과를 거둔다. 이 날은 제57회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박찬욱 감독이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를 수상하여 팔레 데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 무대에 오른날이다.미지의 세계, 한국필자 또래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중반 사람들에게 “한국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한국에 관심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고 물어보면 “한국 영화 때문”이라는 대답을 꽤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영화 매체를 통해, 여태까지 지도에서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접할 기회가 희박했던 ‘미지의 세계’ 한국에 관심이 생겼고, 한국이 향후 10년 간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014년 현재, 많은 젊은 유럽인들은 한국영화가 아니라 한국 음악을 통해 처음 한국이라는 나라를 접하고 있다. 비록 매체는 달라도 한국을 접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우연, 지인의 추천, 마케팅 등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그 문화를 통해서 어떤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물론 영화, 음악, 그 특정한 문화요소를 즐기는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둘러싸고 뒷받침하고 있는 한국 사회와 역사 등으로 관심이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단지 문화를 소비하는 것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넘어가는 데는 무엇이든 추가 요소가 필요하다. “한국영화가 좋아서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면 너무 단순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추가 요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로 젊은이들의 마르지 않는 호기심, 모험 정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들이 아닐까 싶다.프랑스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다른 곳의 풀이 더 푸르게 보인다” 아마 그런 환상을 품고 한국에 온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환상이 깨지기 마련이지만 환상 없이는 따분한 현실에만
티에리 라플렁슈(Thierry Laplanche)
한·중 청소년들의 두터운 우정 체험
연구소 소식 한·중 청소년들의 두터운 우정 체험 ▲ 중국 청소년들은 서울 중앙고등학교 학생들과 만나 북촌에서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우정을 다졌다.재단은 동북아시아의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매년 중국 청소년을 초청하고 있다. 올해에도 중국 충칭시(重慶市) 소재 중학생들을 한국에 초청해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독도체험관, 경복궁, 임진각 등을 방문하며 체험교육을 했다. 이번 체험교육에 참여한 스꺼양(史戈陽) 학생의 편지를 싣는다. _편집자 주운 좋게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하는 ‘중국 청소년 초청 역사체험교육’에 참가하였습니다. 기간은 5일로 짧다면 짧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한국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초청해주신 동북아역사재단과 모든 일정을 함께 한 이현주, 왕쟈오인(王沼尹)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우선 이번 체험 활동의 목적은 동북아 지역의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저는 중국 역사를 배우면서 중국이 일찍이 주변 국가들과 문화, 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교류해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각국 역사 유적지에서 우리는 쉽게 교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번 체험 활동 중 독도체험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중국, 한국, 일본의 역사 교류와 관계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한·중·일 3국은 모든 왕조, 모든 시대, 민족 차원에서 두터운 우의를 다져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섬을 둘러싼 분쟁은 국가 간 안정된 교류를 해치는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도체험관 방문 후, 한국과 중국의 경험과 상황이 같다고 느꼈습니다. 타국 영토를 침범해서는 안 되고 함께 평화를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이런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를 존중하고 상대방을 존중해야만 수백 년간 쌓아온 두터운 우정을 지키고, 동북아 지역이 공동 번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교류는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다음으로 이번 체험 활동에서 한국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
스꺼양(史戈陽)
역사Q&A 발해석각이란? 지난 여름 중국 언론들은 중국의 학계와 민간단체가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약탈해 간 ‘홍려정비’를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을 전했다.여기서 먼저 전제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비석 명칭이다. 간혹 ‘발해석각’으로 알려져 발해가 세운 비석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 비석은 발해와는 무관한 당나라 사신 최흔(崔忻)이 발해 지역을 다녀가면서 요동반도 남단 뤼순(旅順)에 남긴 글자비다. ‘홍려정비’, ‘당비’ 등으로 불리다가 러·일 전쟁 후 석비 외곽에 설치한 정자까지 일본 왕궁으로 옮겨지면서 ‘당비정(唐碑亭)’으로 불렀다. ‘발해석각’으로 알려진 계기는 여기에 새겨진 29구절의 한자 때문이다.“勅持節宣勞靺羯使 鴻臚卿崔忻井兩口永爲 記驗開元二年五月十八日(말갈을 회유할 임무를 지닌 홍려경 ‘최흔’이 여기 두개 우물을 파서 영원히 증거로 남긴다. 개원 2년 5월 18일)”말갈을 회유하는 임무를 지닌 당나라 사신 최흔은 714년(개원 2년) 당으로 돌아가면서 이 글귀를 새겼다고 전한다.발해의 건국 국호는 ‘말갈’이 아닌 ‘진’▲ 현재 일본 왕궁에 있는 홍려정석각석각 내용 중 가장 논란인 부분은 ‘선로말갈사(宣勞靺羯使)’의 ‘말갈’이다. 이것을 빌미로 중국학계는 ‘말갈’이 고왕 대조영이 세운 ‘발해’의 국호로 보고, 713년 최흔이 출사한 후 발해가 ‘말갈’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오로지 ‘발해’로 부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당나라가 발해를 책봉하고 복속시켜 당에 편입시켰다는 증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762년 건립되었다는 일본의 다하성비(多賀城碑, 762년 건립)에 나오는 ‘말갈’과 연결하여 당시 이 말갈이 고왕 대조영의 초기 국호를 말한다고 확대 해석하였다.그러나 발해의 건국 당시 국호가 ‘말갈’이라는 주장은 역사기록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또 일본의 말갈은 ‘하이(蝦夷)’ 즉 아이누를 나타내며, ‘다하성비’ 자체에 위조설까지 있으므로 중국학계에서 이렇게 해석한 것은 실로 ‘방증의 과욕’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연구
김은국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재단 이모저모] 동북아역사재단뉴스 2014년 11월호
연구소 소식 [재단 이모저모] 동북아역사재단뉴스 2014년 11월호 “동북아 속의 한국과 몽골” 학술회의 성황리에 마쳐2 011년 재단과 몽골 과학아카데미 몽골역사연구소 및 고고학연구소는 한·몽 관계사, 북방민족사 정립을 위한 조사·연구, 학술회의 개최, 전문가 상호 교환, 주변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공동대응 등을 목적으로 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한몽역사가협의회’를 발족하였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 서울과 울란바타르에서 번갈아 가면서 한차례씩 공동학술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지난 9월 16일부터 17일 이틀간 몽골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회의실에서 세 번째 회의를 개최하였다.2014년 한·몽 공동학술회의는 두 나라의 역사·고고학 연구 대표 기관들이 현재 당면한 핵심 쟁점과 연구 방향, 방법론, 한계 그리고 문제점 해결을 위해 필요한 노력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또 향후 두 기관이 공조할 수 있는 협력 분야와 주변국의 역사왜곡 등에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에 두 기관은 학술회의 주제를 “동북아 속의 한국과 몽골 :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국제 관계”로 결정하였다.이번 학술회의에서 두 나라 연구자 13명은 선사시대, 흉노, 투르크, 발해, 몽골제국, 만주(17~20세기 초), 20세기 초두, 그리고 오늘에 이르는 큰 시기를 범주로 고고와 인류학, 역사학, 국제 관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지를 피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이견과 의문점에 관해 심도 깊은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대한민국 교육기부 행복박람회 참가재단은 9월 18일부터 21일까지 일산 킨텍스(KINTEX) 제2전시장에서 교육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2014 대한민국 교육기부 행복박람회’에 참가하였다. 교육기부 박람회는 창의적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기업·대학·공공기관 등 사회가 보유한 인적·물적 자원을 교육활동에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비영리로 제공하는 행사다. 재단은 이번 박람회에서 일본군‘위안부’, 고구려, 독도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 광개토대왕비 탁본 및 3D퍼즐 만들기, 독도 3D퍼즐 만들기, 일본군‘위
연구소 소식 [이달의 독도 체험관] '한밭'에서 오감으로 즐기는 독도 특별기획전 ‘한밭(大田)에 선 독도’가 재단, 교육부, 대전광역시 공동 주최로 10월 7일부터 올해 12월 12일까지 대전시립박물관 분관인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10월 7일 열린 개막식에서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이번 전시는 단순히 독도체험관의 ‘서울에서 만나는 독도’ 전시 내용을 그대로 대전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독도체험관 개관 후 새로 수집한 근현대 독도자료들과 연구 성과를 반영한 다른 전시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는 이미 발표한 연구논문, 학술지 차원에서만 다뤄져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독도 관련지도 약 130점을 전시,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독도가 왜 한국 고유영토인지를 설명한다. 이는 독도특별기획전이 매년 열고 있던 독도 순회전을 연장한 것이 아니라, 확장하여 새로 시작한 것이라는 의미다.대전에서 만나는 독도전은 지난 2010년 6월 교육부의 독도교육 강화방안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로, 단순 전시가 아닌 ‘교육’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때문에 진열장 안에 유물을 넣고, 관람객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전시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자료들을 보고, 직접 만져보는 체험전시라는 성격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독도 모형, 3D 프로젝션 지도 영상과 다양한 최첨단 전시매체를 통해 독도의 자연을 3차원적으로 만날 수 있다.전시실은 총 3개관으로 나뉜다. 제1관 ‘독도관’에서는 독도의 자연과 독도수호의 현대사를 다루고, 제2관 ‘역사관 1 : 조선의 울릉도·독도 지견의 확대와 인식 변화’에서는 독도의 명칭 변화를 추적하고, 제3관 ‘역사관 2 : 일본의 울릉도·독도 인식과 변화- 다케시마·마쓰시마는 조선의 섬’에서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인식 변화를 다룬다.전시 외에도 부대행사로 특별 강좌도 마련하였다. 강좌는 총 4회로 이상태 한국고지도연구학회 학회장, 김병렬 국방대 교수, 김호동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전문연구원이 독도의 역사와 자연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