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서울에서 한·중·일 3국 간 갈등을 넘어 협력을 향하여 국제학술회의를 국민대학교(일본연구소·중국인문사회연구소)와 함께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재단의 기획연구에 공동으로 참여한 중국과 일본 학자를 서울로 초청하여 한국 전문가들과 함께 동 주제에 관한 학술 진단을 하는 자리였다. 같은 시기에 한·중·일3국 정부 차원에서 고위급 회담이 서울에서 열렸기 때문에 그 의의가 더욱 부각되었다.
한·중·일 3국은 1999년 ASEAN+3 정상회의를 계기로 동아시아공동체 건립을 향한 '3국 협력'을 지향하며 노력해왔다. 그렇게 해서 2011년에는 '한·중·일 3국 협력사무소(TCS, 서울)'를 개설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일본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21세기 벽두부터 격화된 3국 간 역사인식 갈등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야기하는 일본발 역사인식 차이가 3국 관계 발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3국이 지난 십수 년 동안 지향해 온 '협력' 정신은 퇴색하고,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그 여파로 2008년부터 매년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는 2012년 5월 베이징(北京) 제5차 정상회의를 마지막으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3국 관계는 1999년 당시 내걸었던 지향점과는 확연히 다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지금!" 3국 협력이 중요한가
이에 재단은 한·중·일 3국 간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한 순기능적 협력 사이클'이라는 해법을 마련하고자 지난해부터 3국 학자들이 참여하는 공동연구를 개시하였다. 필자를 포함한 연구팀원 6명은 지난해 9월 도쿄대학과 12월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각각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중·일 관계와 한·중·일 3국 협력"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 결과, 공동연구팀은 한·중·일 3국 '협생(協生, 협력과 공생을 의미 함)'을 주제어로 도출하였다. 그리고 이번 서울회의는 공동연구원 전원이 '협생'을 중심 키워드로 연구한 최종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김학준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한·중, 한·일, 중·일의 양자 관계를 넘어 한·중·일 3국 관계에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한 올바른 협력 해법을 토대로 정방향의 한·중·일 3국 관계 발전' 방안을 모색해 줄 것을 회의 참석자에게 당부하였다. 이어서 한·중·일 3국 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일본대사, 치우구오홍(邱國洪) 주한중국대사(대사관 쳔준지에(陈俊杰) 참사관이 대독), 국립외교원 신봉길 소장, 그리고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의 천펑(陣峰) 사무차장이 각각 기조연설을 통해, "왜? 지금!" 3국 협력이 중요한가에 대하여 각 측의 입장을 충분히 밝혔다.
회의 본론은 두 세션으로 나누어 한·중·일 3국의 상생을 위한 '조건'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떠한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지 다루었다. 제1세션에서는 이원덕(국민대학교 일본연구소장), 모리 카즈코(毛里和子, 와세다대학 명예교수), 그리고 필자가 발제자로 나서 각각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 그리고 한·중·일 관계가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를 제시하였다. 이어서 제2세션에서는 양보쟝(楊伯江, 중국사회 과학원 일본연구소 부소장), 이희옥(성균관대학교 중국연구소장)이 아베 신조와 시진핑(習近平) 체제하의 중·일 및 한·중관계와 한·중·일 상생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짚어 주었고, 박창건(국민대학교 일본연구소 연구교수)이 유럽의 대표적인 상생의 사례인 '엘리제 조약'의 변용을 통한 한·중·일 3국 협력의 제도화 구축 논리를 제시하였다.(회의 자료는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 참조)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한 순기능적 협력 사이클'
이번 회의의 성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제1회 "한·중·일 3국 간 (역사) 갈등을 넘어 협력을 향하여" 국제학술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동북아역사재단을 구심점으로 하는 정기적 학술교류가 궤도에 오른 것이다. 둘째, 3국 학자가 참여한 공동연구에서 도출한 정책 아이디어는 양자가 낸 아이디어보다 합리적이라는 평가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무엇보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3국 정부와 학계에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한 순기능적 협력 사이클' 구축의 중요성을 충분히 환기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 한·일, 중·일 갈등은 기본적으로 퇴행적 역사인식을 가진 아베 신조 총리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중국도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동아시아 역내 갈등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 한국 또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아시아평화협력 구상'을 온전하게 실현하기 위해 중·일 관계 개선이 전제 조건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중·일 3국이 지난 9월 서울에서 정부와 학계 차원에서 고위급 회의와 학술회의를 동시에 열어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앞으로 재단은 불편한 중·일 관계와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할 것이다. 한·중·일 3국이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불리는 상황을 극복하고 동아시아공동체 건설을 위해 협력과 공생의 기초를 부단히 닦기를 바란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재개되면 이제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한 순기능적 협력 사이클"을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