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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외한인은글로벌 네트워크의 중요한 연결고리"
  • 인터뷰 · 진행 ┃ 홍면기 정책기획실 실장

9월 26일 연세대학교 학술정보관에서 재단이 후원한 재외한인학회 추계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학술회의에는 여러나라에 살고 있는 재외한인들이 참여해 '글로벌 한인사회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 홍면기 정책기획실장이 박광성 교수를 만나 세계화 시대 한국이 안고 있는 다문화 수용 문제와 통일에 관한 재외한인의 역할과 시각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_편집자 주

박광성 교수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이린시(海林市) 출신으로 중국 연변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상임이사, 북경시사회학회 이사, 재외한인학회 해외이사를 맡고 있다. 2012년에는 중국교육부에서 인증한 '신세기 우수인재'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대표저서로는 《세계화시대 중국 조선족의 초국적 이동과 사회변화》(2008), 《중국조선족사회의 변화-1990년대를 중심으로》(공저,2006) 등이 있다.

Q 홍면기 재외한인학회 추계학술회의 주제는 "재외한인 네트워크에서 글로벌 한인 역사문화 네트워크로"다. 이번 학술회의 의의는?

A 박광성 한국·중국·미국·일본·뉴질랜드·몽골, 이렇게 서로 다른 사회 환경에서 성장하고 학술 배경이 다양한 학자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연구 주제를 발표하였다. 이처럼 재외한인학회는 한국 학자들이 중심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연구하는 한인 학자들이 교류하는 장이다. 재외한인학회 연구주제를 한인으로 국한하지 않고 소수 집단과 연관 있는 사회과학 주제로 확장하여, 한인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면 진정한 글로벌 네트워크로서 세계적인 공헌을 하는 중요한 창구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역사문화 네트워크'라는 화두다. '역사문화 네트워크'는 아직 개념 정의를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한 분야다. 국제 학계의 초국적 연결망 연구가 주로 경제·사회연결망에 집중하지만, 역사와 문화에 초점을 둔 연구로 지평을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Q 홍면기 재외한인끼리 모이는 이번 학회는 어찌 보면 폐쇄적 모임인데 여기서 개방적인 네트워크를 논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A 박광성 재외한인들은 공통의 문화분모를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 만나보면, 각자 처한 사회 환경이 다르고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거쳐 왔기 때문에 무척 놀라운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재외한인 모임을 폐쇄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한국은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허용하는 국가이지만 재외한인이 보기에는 사유 범위가 매우 폐쇄적이고 동질적이다. 어디를 가나 비슷한 음식을 먹고, 백 명을 만나도 비슷한 의견을 내며, 학연·지연 연결망이 강해 다른 사람이 끼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는 국토가 좁고, 민족이 비교적 단일하다는 특징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다양성이 특징인 재외한인 집단은 한국의 폐쇄성과 동질성 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게 해줄 소중한 존재다. 또 네트워크 형성에는 반드시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재외한인은 한국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Q 홍면기 한국 사회에 좀 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정체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 현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 과제인데, 다문화를 수용하는 능력을 배양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A 박광성 세계화 시대를 살아갈 때 다문화를 수용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우리는 현재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하고 있다. 다문화는 사람의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하고 때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한 사회의 생각이 깊어지고 범위도 넓어진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다문화 담론이 형성되고, 정부에서도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 아니라, 외국인을 '한국화'시키는통합정책이 대부분이다. 한국은 국내시장이 좁아서 세계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시장으로 진출하여 자리를 잡으려면 다양한 배경에서 성장한 인재를 국내에 유치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생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한국 사회가 진정한 '다문화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 내에서 다양한 문화가 꽃필 수 있을 때, 한국 국민의 다문화 수용 능력은 자연스럽게 향상할 것이고 한국도 새로운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Q 홍면기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과 중국의 공조가 진전 중이다. 한국과 중국 관계에서 한인 역사문화 네트워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A 박광성 인류역사에는 명과 암이 혼재되어 있다. 시간에 가려진 암흑의 역사를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을 성찰하여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다. 따라서 인류는 누가 잘못했는지를 막론하고 잘못한 과거의 일을 공동으로 반성하고 성찰하여야 한다. 우리 조상이 한 것이라고 숨기고, 어떤 방식으로든 합리화하려는 행동은 그 집단의 지성이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일본이 아무리 궤변을 늘어놓아도 전쟁과정에서 폭력과 야만성으로 여성을 피해자로 만든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과 중국도 민족주의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역사의 '악'을 성찰하고 반성한다는 보편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만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인 집단은 해당국 국민과 함께 일본군국주의가 저지른 죄악을 파헤치고, 양심 있는 지성과 연대하여 역사비극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연대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Q 홍면기 한국의 절박한 시대적 과제는 통일이다. 통일과정에서 재외한인의 정치·경제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A 박광성 통일은 기본적으로 남북한의 문제다. 재외한인이 통일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을 막론하고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참된 비전이나 의지가 있느냐 하는 문제다. 재외한인에 관한 한국 사회의 논의에서 '재외동포는 통일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라는 담론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 전에 한국사회 내에서 '통일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조선족의 역할을 놓고 보았을 때, 여건이 허락하는 한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가령, 중국 조선족 기업가들은 북한과 경제 교류를 하면서 남한과도 교류한다. 그들을 매개로 남한과 북한이 상품을 거래하는 일이 많다. 문화 부분에서도 조선족 연예인들은 남한에서도 활동하고 북한과 합작하기도 한다. 연변TV에서는 2014년 음력 설 문예프로그램을 북한의 예술단체와 합작하여 연변 안방에 앉아 북한 예술인들의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재외한인의 역할이란 민간 차원에서 경제·문화 교류의 오솔길을 내는 것이다. 큰 통로는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이 만들어야 한다.

Q 홍면기 최근 동북지방 조선족 사회가 해체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일까?

A 박광성 지난 20년간 조선족 사회는 매우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한 동네에서 오손도손 모여 살던 사람들이 근 20년이라는 시간동안 베이징(北京)·서울·도쿄(東京)·뉴욕·모스크바·파리로 헤쳐 흩어졌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인가? 조선족의 이러한 폭발적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연구하는 것은 미래 조선족 연구에서 주목하여야 할 과제다.

'조선족 사회가 공동화되고 해체되고 있다'는 주장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관해서는 더욱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우선 '무엇이 공동화하고 있는가'를 볼때, 공동화하는 것은 전통 거주지인 농촌이다. 공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세계의 보편적 현상이다. 또, '농촌이 공동화되면 민족사회가 해체되는지?', '도시에서는 민족사회 유지가 불가능한지?' 하는 고민이 따를 텐데, 세계 범위에서 보면 유구한 문화전통을 가진 소수민족집단이 도시생활로 해체되었다는 결론은 없다. 오히려 도시공간에서 다양한 민족집단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통합할 것인지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쟁점이다.

조선족은 뒤늦게 도시화 과정에 합류하였지만, 그 도시화 양상이 세계화라는 특징을 띠면서 '초국적 도시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족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답은 누구도 쉽게 예단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조선족이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하는 '제2근대'나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말하는 '액체근대' 현상의 대표 사례라고 본다. 불확실성이 많아 미래를 전망하기 힘들다. 그저 주의 깊게 지켜볼 뿐이다.

Q 홍면기 최근 중국에서는 베이징대학 마룽(馬戎) 교수 등을 중심으로 소수민족 정책에 관한 새로운 이론과 정책 동향이 형성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연구 동향은?

A 박광성 건국 후에 중국은 기본적으로 '민족'을 정치적 속성을 내포한 개념으로 보고, 민족 문제가 정치 문제를 구성하는 일부라고 보았다. 이에 따라 민족정책의 우선순위는 각소수민족의 평등한 정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었고 중국의 역사 상황과 당시의 정치 상황으로 봤을 때 매우 현명한 정책이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서구 학문에서 영향을 받은 일부 학자들이 구소련 해체 과정에서 민족 요인이 유발한 결과에 주목하면서, 중국의 민족정책에 관한 새로운 논의를 시작했다. 그들의 주요 관점은 기존 민족 정책이 '민족'을 강조하다 보니, '국민'이라는 통합된 정체성 형성에 소홀한 측면이 있고, 따라서 '민족'을 강조하기보다 '국민의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대표하는 학자가 마룽 교수다. 그는 '민족'을 정치 개념으로 파악하지 말고 문화 개념으로 봐야 하며, '민족 단위의 정치 권리'를 강조하기보다 '국민'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소수민족의 권리를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중국에서는 이 두 가지 주장이 팽팽히 맞서 치열한 논쟁 중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이 두 주장 모두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다. 중국 정치·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중용'의 철학임을 생각할 때 앞으로 중국은 소수 민족의 각종 권리를 보장하는 민족정책을 유지하면서 '국민의식' 교육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Q 홍면기 현재 재외한인 네트워크는 좀 느슨하고 산발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더욱 긴밀하고 고차원의 유기적 조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 박광성 개인적으로 느슨하고 '산발적인' 네트워크가 많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재외한인 네트워크는 모두 한국과 맺은 관계 중심이고 재외동포재단과 같은 기관이 주도한다. 즉 진정한 그물형 네트워크가 아니라, 재외동포사회-한국 쌍방향 연결형이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중국 화교사회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에서 추진하는 형식도 있지만 혈연, 지연, 업종에 기초해 민간이 주도하는 다양하고 다층적인 연결망이 만들어져 있다. 이 연결망들이 중첩되면서 더욱 큰 연결망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폭넓은 연결망 구성은 지금보다 작은 산발적이고도 다양한 연결망에 기초해야 한다. 고차원의 재외한인 네트워크 구성을 위해서는 재외동포사회 사이에 교류도 활발해져야 하며, 정부와 민간이 주도하는 다양한 방식의 네크워크들이 있어야 한다. 이는 각 재외동포사회의 시민사회 활성화와도 연관이 있다. 개인적으로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와 같은 조직들이 더욱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시민사회 활성화와 국제교류 필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앞으로 재외한인연결망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지난 9월 26일 연세대학교 학술정보관에서 개최한 재외한인학회 추계학술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