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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북아 정세의 변화와 우리의 과제
  • 최진규 조선대학교 교수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세력구도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남북통일 기반 위에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에 대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출범한 동북아역사재단이 그동안 역사 문제에서 나아가 동북아의 정세 변화에 따른 정책 방향을 다각도로 모색해 온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평가받아 왔다. 역사 문제는 미래의 동북아 질서 수립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 성장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묵인 등 외적 변화는 팽팽한 남북 긴장 상태와 함께 무거운 짐으로 우리를 누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의 개방과 남북화해 그리고 통일에 대한 기대도 차츰 커지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일본의 재무장, 북한과 일본의 교섭, 미국발 경제위기와 동북아 정책 기조의 변화 등에서 감지되는 오늘의 동북아 정세는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복잡한 세력구도를 구한말 서구 열강에게 개항을 강요당하던 시기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시에는 영국을 필두로 한 서구 열강에 일본이 가세하여 한반도와 중국의 각종 이권을 쟁탈하였다면, 오늘날에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방 세계가 일본과 함께 중국을 포위하는 형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과 중국·러시아를 한 축으로 하고, 남한과 미국·일본을 또 다른 축으로 한 기존 세력구도에 급격한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의 개방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남북한 긴장 완화와 동질성 회복을

일본과 대화를 이어가던 북한은 6월 말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3대원칙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입각하여 남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자”는 특별제안을 국방위원회 명의로 제시하였다. 이에 정부는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즉각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7·4 공동성명 42주년을 기념하여 7월 4일 0시를 기해 남북 사이에서 비방·중상과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지하자는 북한의 제의에는 당장 8월로 다가온 을지 한미 연합훈련을 중지할 것을 포함하고 있어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개방과 더불어 머지않은 장래에 남북 사이에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남북이 지금과 같은 적대적 긴장 관계를 지속한다면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남북 모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세력구도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남북통일 기반 위에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에 대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적으로 심각한 양극화 해소와 남북 긴장 상태의 해소가 선결 과제다.

전통문화 계승을 통한 새로운 역할 정립을

오랜 역사 속에서 교류하고 경쟁하며 공동 유산을 축적해 온 동북아 3국이 미래에 어떻게 협력해야 할 것인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다. EU와 같은 동북아 공동체 구상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가 전개된 것은 그 때문이다. 당연히 동북아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논의는 현존하는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의 유산을 계승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는 남북통일을 이룩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여 지리적 이점을 살려 새로운 시대의 우리 역할을 준비하는 일이다.

먼저 냉전 시대의 마지막 미해결 과제로 남겨진 남북통일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은 군사적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경제·문화 등 민간 분야에서부터 교류를 확대하여 통일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개방을 도우면서 남북이 힘을 합하여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단절 극복을 위한 동질성 회복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전통문화를 바르게 인식하고 계승해야 한다. 동북아는 유교·불교·한자 등을 공유하면서 역사를 전개해 왔다. 개항 후 전통문화를 부정하고 서구 문화가 두드러졌지만 전통문화는 여전히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자 미래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자는 전통 문화의 기록 문자인 동시에 현재의 언어에 담겨 여전히 살아 있는 문자다. 이처럼 소중한 문화 자산을 외국어로 치부하여 도외시한다면 역사 연구와 계승은 물론 학문의 축적과 전승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미래 동북아 질서 속에서 우리가 담당할 역할을 점검하고 준비해야 한다. 지리상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동쪽 끝에 있어 과거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 미래에 건설될 유라시아 대륙 횡단철도는 한반도를 기점으로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우리는 완비된 정보통신망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 전 지구가 하나가 되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교류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기존의 지리상의 이점과 정보 기반 시설을 극대화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정보통신 기반을 생산적이고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네트워크 윤리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 속 '향약'을 참고하여 이른바 '망약(網約)'을 온라인 규약으로 마련하여 실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역사적 과제를 차질 없이 실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내부 통합을 먼저 이뤄야 한다. 극도로 심각해진 경제 양극화를 해결하고 잔존하는 지역감정을 해소하며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사안일과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새로운 동북아시대를 열어갈 다음 세대는 양극화와 지역감정, 부당한 관행 속에서는 결코 육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능과 구태 정신을 청산해야 할 당위가 여기 있다. 통일 한반도가 세계 교류의 거점이 되고, 사회적 책임감이 투철하면서 국제 감각이 넘치는 미래 세대가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를 기대한다. 풋풋한 청춘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세월호의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