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재일사진작가 안세홍 씨가 도쿄 니콘살롱에서 열려던 사진전 '重重(겹겹)-layer by layer'이 돌연 취소됐다. 안 작가는 항의했고 니콘살롱 측은 대화를 거부했다. 도쿄지방법원이 니콘살롱을 사용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전시는 재개했지만 니콘살롱 측은 우익에게서 작가와 작품, 시설을 보호한다면서 전시장 안에 변호사를 상주하도록 하고, 심지어 관람객 몸을 수색하기도 했다. 안 작가는 정상적인 전시를 방해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니콘살롱 측을 고소했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1심이 진행 중이다. 2014년 6월 1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온 안 작가를 강정미 홍보팀장이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만났다. _편집자 주
안세홍 재일사진작가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재일한국인 3세와 결혼해서 나고야에 산다. 중학생 때부터 탈춤사진을 찍기 시작해 장애인, 인권 운동 등 사회 소외 계층을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2001년부터 5년간 중국 오지에서 쓸쓸하게 살고 있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가 찍은 사진집 『겹겹 -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펴냈다. 일본 12개 도시를 비롯하여 뉴욕, 파리, 베를린,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수차례 전시회와 강연회를 열고 있다. 한일 두 나라의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겹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Q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 온 목적은?
안세홍 경상남도 지역에 살고 계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 방한했다. 현재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할 예정이다. 개인 사정 때문에 2008년 무렵부터 국내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사진 작업을 중단했었다. 그러다 아시아 전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두 기록하기로 하면서 국내에 생존해 계시는 분들도 다시 만나고 있다. 고 배춘희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쉰 네 명이 생존해 계시는데 이번에 방문하는 경남에는 7명이 살고 있다고 들었다. 국내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중국 베이징과 산시성을 방문한다. 중국에서 '위안부'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특히 난징에서는 꼭 열고 싶다. 『겹겹-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는 여러 가지 아픈 사연을 지닌 채 중국에서 외롭게 살고 계시는 한국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록이다. 이번에는 "중국인" 피해자들을 만나려고 한다. 잘될지 모르겠다. 중국말고도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동티모르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계시는 곳은 어디든 가서 그분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
Q 할머니 사진은 대부분 흑백이다
안세홍 다색사진은 '사실성'이 특징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한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데는 흑백사진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주변으로 시선이 분산되는 것을 막고 할머니들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사진을 보면 할머니들의 고통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런깊은 울림을 주는 사진을 찍으려면 힘들지 않나?
안세홍 만나자마자 사진부터 찍는 일은 없다. 그분들의 모습을 담아 세상에 알려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들이 나서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목적이 좋다고 해서 목적을 앞세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자주 찾아가서 만나고 얘기를 나누며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일상을 사진에 담을 수 있게 된다. 당사자들도 찍는 것을 허락한다. 정작 사진을 찍는 시간은30분에서 1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사연을 모르고, 아픔을 알지 못하고,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면내면을 사진에 제대로 담기 어렵다.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 출신 할머니들은 대부분 오지에 산다. 다섯 번 넘게 찾아가 만난 어른들도 있다. 한번 갈 때마다10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심지어 걸어서 찾아가야 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할머니들이 당한 고통, 힘겨운 세상살이를 듣는 것이야말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진짜 힘든 것은 따로 있다. 사진 찍고, 세상에 알리는 것에 나름 가치를 두지만, 다시 찾아가보면 할머니들 처지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나빠져 있기도 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할머니들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람들 반응도 없고, 실제 필요한 도움을 드리지 못할 때, 그럴 때 미안해서 자괴감도 들고 정말 힘들다.
Q 할머니들이 사진의 의미를 알고 있나?
안세홍 자신들의 문제를 알리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처음에는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충분히 얘기를 나누고 가족 동의도 얻어서 한다. 동의하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는다. 작품집을 보내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신다.
Q '겹겹 프로젝트'를 소개해 달라.
안세홍 '겹겹'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한자로는 '중중(重重)'이고, 일본어로는 '쥬쥬(juju)'라고 한다. 할머니들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겹겹이 패어 있다는 뜻이면서, 가슴속 한이 아직도 풀리지 않아 켜켜이 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겪은 고통이 무겁고 크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의미도 담겨 있다. 다른 한편으로 작은 힘이 모이고 쌓이면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혼자서 만나고 사진만 찍다가 이것을 프로젝트로 확장한 것은 2~3년 전부터다. 사진 전시회가 중심이지만 그 밖의 다른 분야 예술과도 결합하여 문화적으로 시민들에게 이 사안을 알리는 일, 할머니들에게 실제 절실하게 필요한 일, 예를 들어 집을 고쳐드리는 것도 모두 '겹겹 프로젝트'로 묶어서 하고 있다. 지난해 발간한 도록 『겹겹-지울 수 없는 흔적』은 우리 회원들이 할머니들을 만나서 서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느낀 점을 후기로 남겼는데, 그 글을 모아 펴낸 것이다.
Q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나?
안세홍 현재 운영위원은 7명이고,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20명 내외다. 지금까지 후원을 해준 회원은 약 700명 정도다. 주로 일본 사람들이다. 일본인 참여가 많은 것은 바람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지 않나? '겹겹프로젝트'는 일본인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일본인들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준비만 3년 했다.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기도 하고, 일본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 접근방법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사람들을 섭외하고 모으느라 시간이 걸렸다.
해외에 나가보면 단순히 한·일 두 나라 역사문제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나라가 괜한 싸움을 하고있다고 하면서 무작정 일본 편을 드는 사람도 꽤 많다. 그 사람들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고 이웃나라를 침략한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도 알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일본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싶다.
Q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우리 주장이 외국에서도 충분히 공감을 얻고 있는 것 아닌가?
안세홍 우리 주장만 전달하고, 남들이 편들어주는 말만 우리 언론이 전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만나서 얘기하고, 해외 언론을 직접 접해보면 상황이 절대 우리한테 유리하지 않고, 그들이 우리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항상 한국과 일본의 주장이 무엇인지 번갈아 물어본다. 주장의 근거와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사진전을 열기 위해 해외 전시장을 알아보고 다니다 보면 일본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 사람도 아니고 일본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닌데도 자기가 운영하는 전시장에서 이 주제로 전시회를 여는 것을 거부하는 일도 잦다.
Q 잘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안세홍 일단 대다수 일본인들은 관심이 없다. 어렵고 골치아픈 문제라고 생각해서 아예 이 문제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은 이 문제의 정확한 실상을 알리는것이다. 마지막으로 해결책을 찾고, 해결을 위해 실질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중에서 실상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내 역할이고,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그것에 대해 실제 공감하도록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다. 일본인들도 시민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자기들끼리만 모인다. 이 문제를 몰랐던 사람들이 모임에 참여하도록 해서 이 문제를 아는 사람을 늘려가야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본 사람들은 사진을 좋아한다. 우연이라도 전시회에 찾아와서 사진을 보고 설명을 듣고나면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계속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다.
Q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겹겹 프로젝트'도 끝나는 것인가?
안세홍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계속 할 것이다. 할머니들이 살아 계시는 동안 그 분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시더라도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 뒤에 남아 애쓰는 사람들의 활동을 사진으로 찍고, 이 문제를 알리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 돌아가셨다고 그만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Q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요즘 한·중이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것 같다. 두 나라 정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안세홍 2006년부터 여성가족부에서 중국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에게도 700~800달러를 생활지원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개인 통장에 달러로 입금하는데 늙고, 병들고 오지에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할머니가 은행이 있는 시내까지 나가기도 어렵지만, 찾은 돈을 환전하는 일도 어려워서 관리를 잘못한다. 더 기막힌 것은 일부 주변의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 안 되는 그 돈을 착복하는 일도 있다. 돈 보내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제대로 받았는지, 잘 쓰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나라가 할 일 아닌가 싶다. 또 정신분열증으로 누워서 생활하는 할머니도 있다. 아무도 보살피는 사람이 없으니 집은 무너지고, 사람 살 곳이 아닌 곳에서 지내기도 한다. '겹겹' 회원들과 같이 도배도 하고 집 손질도 해드리지만 한계가 있다. 우리 정부가 정기적으로 돌보아 드릴 수 없을까? 한국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을 동사무소에서 챙기고 보살피지않나? 나라 밖에 있으니 어려움이 있겠지만 중국 정부와 상의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좋겠다.
Q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의 생각은 어떤가?
안세홍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가슴 아프다"고 한다. 그걸로 끝이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일본 땅"이라고 답한다. 선을 긋는다. 60대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대체로 반응이 같다. 그래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그래도 설득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사진전을 여는 것이다. 꼭 갤러리에서 연다. 일본에서는 갤러리가 일반 대중들이 편견 없이 찾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구청 청사 내전시실은 돈은 들지 않지만, 시민들은 그런 곳에는 잘 가지 않는다. 갤러리는 본래 작품이 걸리는 곳이고, 작품성에 대해서도 믿을 만하다고 여긴다. 그런 곳에서 사진을 전시하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사진 속 주인공들의 사연을 얘기해 주면 반응이 달라진다.
Q 한국 시민들이나 관련 단체에 하고 싶은 말은?
안세홍 정부는 정부대로, 시민단체는 단체대로 각자 역할이 있다. 그 경계를 넘으려 하면 서로 부딪친다. 또 일부 한국 사람들은 이 문제를 여전히 한일 간 미해결 역사 과제로 접근하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그래서는 해결할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양국 국민들의 감정 다툼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 보편적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현재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면 분노가 인다. 그러나 분노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이성과 논리로 따져서 분노를 문제 해결을 위한 에너지로 승화해야 한다.
Q 그러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안세홍 중국 내 한국인 피해자들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었다. 중국 국적이거나 북한 국적이었고, 심지어 무국적으로 남아 있는 예도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 국적이 아니어서 우리 정부가 지원을 하지 못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2005년도에 할머니들의 국적을 회복하는 사업이 있었고, 그 이후 지원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 피해자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국제사회와 함께 이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일본을 압박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중심 역할을 한국이 해야 한다. 한국은 이 문제를 오래 전부터 제기하고 선도해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