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은 6월 20일 '일제식민지배 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법정책적 과제'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재단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일본군 '위안부'와 일제강제징용 피해 등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및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에 대한 '식민지'책임과 한일협정체제를 재조명하고 201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2012년 대법원 판결의 향후 과제에 대해서 검토해 왔다.
올해로 4년차인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2015년 한일협정 체결 50년을 앞둔 만큼 지난 3년간 규명해 온 역사적 진실과 법규범적 정의의 토대 위에서 '일제식민지배 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법정책적 과제' 검토가 긴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기획되었다. 이번 국제학술회에서는 최근 주일대사관에서 발견된 명부에서 확인한 일제식민지배 피해자의 구제와 관련하여 한일 간 역사 갈등의 본질을 규명하고 법정책적 과제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전제에서 이번 국제학술회의 프로그램은 일제식민지배 피해와 일본의 국가책임 및 관행에 대한 검토, '식민지'책임과 관련된 국제법적 관행으로서 중국-일본, 영국-케냐, 네덜란드-인도네시아 간 식민지배 피해배상사건에 대한 검토, 일제식민지배 피해구제와 법정책적 과제에 대한 검토 등 3개의 세션과 종합토론으로 구성되었다. 다음에서 발표자들의 주요논지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정치 논리로 가득 찬 일본 사법부의 판결
장세윤 재단 연구위원은 '3·1운동과 관동대지진 한인학살피해의 역사적 조명'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1919년 3·1운동 당시 일제의 탄압으로 한국인 7,509명 사망, 15,961명 부상, 46,948명 투옥뿐만 아니라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때 한인 9천여 명 피살설 등 진상규명 자체가 미흡하므로, 체계적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며 일본 정부에 대한 책임 있는 진상규명과 배상 요구가 절실하다고 하였다. 아리미츠 켄(有光健) 일본 '전후보상' 네트워크 대표는 '일본의 전후보상 현황과 국가관행의 문제점'이라는 발표에서 일본이 식민지 지배·강제 동원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을 자각해야 하고, 과거와 미래를 소중히 하는 기본 원칙을 확인하는 공동선언을 통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최종적 해결론'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협정 체결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장박진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한일청구권 교섭과 개인피해보상 문제-미해결의 기원과 해법을 위한 함의'를 발표하면서 일본은 실제 체결된 협정에서 무상 및 정부 차관 5억불이 경제협력이라는 공식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동 협정과 관련하여 자신들이 제공한 자금과 개인청구권의 법적인 관련성을 절연시켰다고 강조했다.
다카기 요시타가(高木喜孝) 일본 변호사는 '일본-중국 강제 징용 피해 니시마츠사건의 검토' 발표에서, 청구권의 '포기'란 재판상 소구(訴求)할 권능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판결하면서도 중일공동성명으로 자국민의 청구권 포기 여부와 관련한 중국 정부의 견해를 전혀 듣지 않는 등 정치적 논리와 비약으로 가득 찬 일본 사법부의 판결을 비판했다. 캐비타 모우디(Kavita Modi) 영국 변호사는 '영국-케냐 마우마우사건: 역경에 대항한 승리'라는 발표에서, 케냐 식민지배시 영국군과 식민성(Colonial Office)을 통해 '고문 시스템'을 장려, 묵인, 공모함으로써 고문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영국 정부에 대한 법적 책임이 케냐 식민지 정부의 법적 책임으로 이전되지 않는다고 했다. 강병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네덜란드-인도네시아 식민지배 배상판결의 검토'에서 식민통치와 관련된 라와게데 사건 배상판결의 배경으로 2010년대에 와서 네덜란드에 신세대가 등장함으로써 '심각한 인권침해는 시효가 없다는 점'을 부각하였으며, 피해자에 대한 배상 이외에 네덜란드 국가의 진심어린 '사과'가 중시되었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최철영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일제식민지배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책임' 발표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강제동원과 위안소 설치 및 관리라는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의 위반행위에 대한 책임이 남아 있으며, 한일협정 체결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침묵하고 이들 조약을 원용하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오타 오사무(太田修) 도시샤대학 교수는 '일본 정부의 식민지배와 전쟁책임의 과제' 발표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은 국가에 의한 폭력 그 자체이므로,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완료론'의 비정의(非正義)를 극복하고, 나아가 식민지 지배·전쟁 피해를 포함하는 모든 국가 폭력·인권 침해에 대하여, ①진실 규명, ②책임 추궁, ③사죄, ④경제적 보상, ⑤교육, 기억, 법적·제도적 장치의 정비를 실시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무대에 설 수 있음을 역설했다.
인간 존엄을 바탕으로 적극적 평화 개념 정립을
끝으로 필자는 '일제식민지배 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법규범적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였고, 인권, 정의, 평화의 국제법상 법리의 제시를 통해 첫째, 일제식민지배의 토대이자 제국주의 침략 노선의 근간이 되었던 국가주의 철학으로부터 인권중심 사고로의 전환, 둘째, 일제식민지배 피해자들의 침해당한 인권에 대한 응답가능성으로서의 정의의 추구, 셋째,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전제로 한 소극적 평화에서 나아가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인간의 존엄을 전제로 하는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한·중·일 뿐만 아니라 영국-케냐 간 식민피해소송을 직접 수행한 영국변호사 등 이 분야에서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을 통해 '식민지'책임에 대한 추궁과 피해의 청산이 세계적인 과제로 대두되는 시점에서 일제식민 지배 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법정책적 과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공유하는 귀중한 자리였다. 2015년 광복 70주년과 한일협정 체결 반세기는 일제식민지배 피해자의 인권구제라는 정의의 구현을 통해 동아시아평화공동체의 구축으로 나아가는 원년이되어야 할 것이다.